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국가 기밀문서 반출로 국가기록물에 관한 관심이 뜨겁다. 1978년 대통령 기록법 제정 이후 미국에서는 대통령 재임 당시 기밀문서는 공공재산으로 분류되어 퇴임 후 국가기록원으로 이송된다.
그러나 대통령 기록법 제정 이전에는 사실상 기밀문서 자체가 대통령의 소유물이었다. 대통령에게 불리한 내용을 담은 기밀문서의 경우 언제든 이를 폐기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27일(현지시간) 역대 미국 대통령의 사례를 나열하며 대통령 기록법 제정 이전에는 국가 기밀문서 등이 사실상 대통령의 소유물로 간주됐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은 1797년 퇴임 당시 재임 당시 문서를 그의 집으로 가지고 갔다. 이후 미국의 어떤 공무원도 문서가 있는 그의 집을 수색한 적이 없다. WP는 “그 당시 문서는 정부가 아니라 전 대통령의 것이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워싱턴은 기밀문서 등을 보관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며 좋은 선례를 남겼다. 1799년 워싱턴은 임종 전 그의 비서에게 “대부분 글과 군사 편지 등 문서들을 정리하고 기록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버지니아에 문서들을 보관할 건물을 짓기로 계획했지만 끝내 이루지 못했다.
이후 워싱턴의 문서는 조카인 부시 로드 워싱턴 대법관에게 넘어갔다. 부시 로드는 워싱턴 대통령에 대한 전기를 쓰고 있던 존 마셜 대법원장에게 많은 문서를 빌려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문서들은 쥐들에 의해 훼손됐고, 습기에 의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됐다. 게다가 워싱턴 대통령의 부인 마사 워싱턴은 남편과 주고받은 남은 편지마저도 불태웠다. WP는 “조지 워싱턴이 전쟁을 떠나기 직전 쓴 글 두 편을 포함해 일부 문서만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워싱턴 대통령의 선례는 한동안 후임 대통령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다. 2대 대통령인 존 아담스와 그의 아들인 존 퀸시 아담스 6대 대통령은 문서 보관에 각별한 신경을 썼다. 그들의 후견인은 나중에 문서 등을 매사추세츠주에 기증했다.
그러나 이후 대통령 기밀문서는 전쟁으로 인해 불타거나 대통령이 자체 폐기하는 지경에 이른다.
미국의 10대 대통령인 존 타일러의 문서는 리치먼드 은행에 보관됐으나 전쟁이 발발하며 불에 탔다. 재커리 테일러 12대 대통령의 문서는 1862년 연방군이 문서가 보관돼 있던 그의 아들의 집을 점령했을 때 사라졌다. 에이브러햄 링컨 16대 대통령의 문서는 그가 암살당한 이후, 그의 아들 로버트 토드 링컨이 대부분 문서를 폐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율리시스 S. 그랜트 18대 대통령은 문서 관리 자체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문서를 다시 찾기 위한 유일한 장소는 코트 주머니나 보좌관의 손이었다”고 했다. 문서 관리 자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탓에 보관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결국 그는 대부분 문서를 잃었다.
체스터 A. 아서 21대 대통령은 언론에 대응하거나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꺼렸다. 1886년 그가 사망하기 전 그는 아들에게 대통령 재임 당시 문서를 파기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보좌진들은 “세 개의 큰 쓰레기통에서 대통령 문서의 대부분이 탔다”고 말했다. 그로버 클리블랜드 22·24대 대통령은 문서를 보존하는 데 관심이 없었다. 그는 자신에게 전달된 모든 서류를 자신의 사유재산으로 간주했으며 “파기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되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일부 대통령은 문서를 보존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26대 대통령과 윌리엄 하워드 타프트 27대 대통령은 문서를 정리해 의회 도서관에 넘겼다. 문서는 70만 건이 넘었다고 한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32대 대통령은 자신의 재임 당시 문서를 국가기록원에 기증하는 선례를 세웠고, 루즈벨트 도서관을 건립했다.
미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야 기밀문서를 분류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대통령 재임 당시 문서에 대한 분류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후 리처드 닉슨 37대 대통령을 제외한 모든 대통령은 재임 당시 문서를 정부에 넘겼다.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일부 문서를 통제하려고 시도했었다. 그러나 1978년 대통령 기록법 제정으로 그는 결국 4200만 페이지에 달하는 문서를 정부에 넘겨야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닉슨 이후 대통령 문서를 개인 소유로 유지하려는 첫 전 대통령인 셈이다. 그는 1급 기밀문서를 자택으로 가져왔고, 문서들을 신문이나 잡지 등과 뒤섞어 놓는 등 부실하게 관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재임 당시 문서에 대해 “내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했다고 WP는 전했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