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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커크 피살로 미국이 정치 폭력 시대에 들어가

미국 사회가 엄청난 충격을 받고 흔들리고 있다.

보수 운동가 찰리 커크(Charlie Kirk)가 유타 밸리 대학교(University of Utah Valley)에서 연설 중 총격 사망하면서, 정치적 폭력(political violence)의 수위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여러 정치 인사들에 대한 폭력 시도와 암살 사례들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에서 찰리 커크 역시 총격 살해됐다며 학계 전문가들은 사실상 미국이 정치 폭력 시대에 들어갔다고 지적했다.

주형석 기자입니다.

찰리 커크의 갑작스러운 피살은 미국인들을 경악시켰다.

미국인들은 지금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매우 혼란스럽다는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치인에 대한 살인 시도와 폭력 사태가 빈발하는 야만의 시기에 미국이 들어섰다고 진단하고 있다.

예컨대 1960년대 케네디 형제 암살,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암살, 말콤 엑스 암살 등의 격랑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폭력적 포퓰리즘(violent populism)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극한적인 분열과 증오가 정책적인 경쟁의 일부를 넘어서 물리적 위협, 공격으로까지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찰리 커크 이전에도 미국에서는 이미 끔찍한 사건들이 잇따랐다:

미네소타에서는 멜리사 호트먼(Melissa Hortman) 주하원의원과 그녀의 남편이 총격 살해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조쉬 샤피로 펜실베니아 주지사 집에는 방화 사건이 발생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 정치인들에 대한 암살 시도와 공격도 계속됐다.

이처럼 정치 지도자들과 공적 인물들이 직접 위협을 받거나 실제 폭력의 대상이 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사회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찰리 커크가 살해된 곳을 관할하고 있는 공화당 소속의 스펜서 콕스(Spencer Cox) 유타 주지사는 지금 미국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여러가지 정치적 암살과 시도들을 언급하면서 뼈저린 회한을 표했다.

민주당 소속 티나 스미스(Tina Smith) 미네소타 연방상원의원은 품격있는 공적 언어(rhetoric)의 사용과 혐오 표현의 자제 등을 통해서 정치 지도자들이 갈등을 부추기지 않도록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논쟁과 설득이 정치의 본질인데, 그것이 폭력으로 대체되면 민주주의는 심각한 기반을 잃는다고 본 것이다.

정치 폭력은 단순한 극단단체의 테러행위나 일시적 사건이 아니다.

사회 전체의 불만, 불신, 양 진영의 적대화(dehumanization)가 폭력을 위한 토양이 되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 정치적 경쟁자가 “해로운 정책”을 추진할 경우 다수의 미국인들이 폭력을 어느 정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최근 들어서 증가하눈 추새를 보이고 있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단순한 평면적인 경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얼마나 위험한 국면에 와 있는가를 보여주는 지표라는 평가다.

미국에서 일어난 이번 일련의 사례들은 단순히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러 나라에서 정치적 양극화와 증오 표현(hate rhetoric)이 늘면서, 정치의 공적 정체성(public sphere)이 흔들리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도 선거, 언론, SNS 등의 환경에서 유사한 도전 과제를 갖고 있다.

폭력과 위협이 정치 행위의 일부가 되는 상황은,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참여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한다.

지도자들의 책임성 (political responsibility), 언론의 역할, 시민사회와 법제도의 강건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드러난다.

또한, 공적 인물이나 단체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낼 자유와, 동시에 폭력이나 적대적 언사가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균형이 필요하다.

찰리 커크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서, 미국식의 민주주의가 직면한 위기의 상징이다.

이번 사건을 단지 ‘충격적인 뉴스’로만 받아들일지, 아니면 정치적 논쟁의 방식, 지도자 역할, 사회의 언어 사용 등 여러 지점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볼지, 그것은 미국 사회 선택의 몫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