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와의 전쟁을 펼치고 있는 전 세계의 최근 관심사는 멘톨(박하향)을 포함한 각종 향이 첨가된 가향담배를 근절하는 것이다. 가향담배가 여성이나 청소년 등 비흡연자에게 ‘흡연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담배시장에서 오히려 가향담배는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판매 담배 대부분이 가향담배지만 현재 마땅한 규제책이 없기 때문이다.
가향담배는 담배에 인위적으로 맛이나 향을 느낄 수 있게 향료 등의 성분을 첨가한 담배를 말한다. 멘톨, 바닐라, 계피 등의 가향 물질 첨가로 연기 흡입 시 담배 특유의 매캐하고 거친 맛이 감춰져 흡연을 용이하게 한다. 담배 필터 안에 향료 캡슐을 삽입하는 이른바 ‘캡슐담배’나 ‘액상형 전자담배’가 대표적인 가향담배다. 24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국내 시판 캡슐담배 29종에 존재하는 33종 캡슐에 대해 성분 분석을 진행한 결과, 총 28종의 물질이 검출됐으며 대부분 맛과 향을 내는 가향성분인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멘톨 담배를 포함한 가향담배 판매를 2024년까지 완전 중단키로 했다. 2009년 멘톨을 제외한 과일향, 캔디향의 가향담배 판매를 금지한 데 이은 추가 조치다. FDA는 “멘톨 등 특유의 향을 담배에 첨가하면 자극과 저항감을 줄여 흡연을 부추길 수 있다”며 “특히 미성년자, 여성 등을 흡연으로 이끄는 요인이 된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가향담배 규제책을 꺼내든 배경에는 가향담배가 사실상 비흡연자가 흡연자가 되는 통로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수행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담배를 피워본 경험이 있는 12~17세 중 80.8%가 가향담배로 흡연을 시작했다고 답했다. 미국이 가향담배를 아동 및 청소년 등 비흡연자를 흡연자가 되도록 하는 ‘관문(gateway)’이라고 결론 지은 이유다.
미 언론 SCJ는 최근 의학저널 ‘자마 네트워크 오픈’에 게재된 연구를 인용해 멘톨을 첨가한 담배가 청소년의 흡연 빈도와 니코틴 의존도를 높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연구는 멘톨 담배가 금연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기에 FDA가 제안한 멘톨 향료 금지를 강력하게 지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유럽연합(EU)은 가향담배의 이 같은 위험성을 인지하고 2016년부터 이를 강하게 규제하고 있다. ‘EU 담배제품 지침’에 따르면 회원국은 시장에서 특정한 향을 내는 담배제품의 판매를 금지하고, 담배 제조 시 첨가물로 인해 특정한 향이 나는 제품은 허용되지 않는다. EU는 이미 2020년 5월부터 멘톨담배를 퇴출시켰다.
브라질은 2012년 세계 최초로 모든 담배제품에 멘톨향을 포함한 가향물질 첨가를 금지하는 법령을 통과시켰다. 담배회사가 불복해 정부에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으나 브라질 정부가 승소해 전체 담배제품에 향료 및 첨가물이 금지됐다. 캐나다도 연방 담배법을 통해 멘톨을 포함한 가향담배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오히려 정반대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담배 총판매량은 2011년 44억갑에서 2020년 35억9000만갑으로 8억1000만갑이 감소했지만 같은 기간 가향담배는 2억7000만갑에서 13억8000만갑으로 11억1000만갑 증가했다. 담배 총판매량에서 가향담배가 차지하는 비중도 6.1%에서 38.4%로 급증했다.
가향담배가 급증한 이유는 흡연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출 뿐만 아니라 아무런 규제책이 없기 때문이다. 가향담배 규제는 국민건강증진법 제9조의3에 따라 담배에 ‘가향물질’을 포함하는 경우 이를 표시하는 문구나 그림·사진을 제품의 포장·광고에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유일하다.
가향담배 규제를 위해서는 담배사업법이 개정돼야 하는데 담배 세수가 40% 감소할 수 있기에 정부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11건의 담배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지만 지금까지 단 한 건도 통과되지 않은 이유다.
근본적으로는 담배 및 배출물의 성분 공개가 선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국회입법조사처의 ‘가향담배에 대한 해외 규제 사례 및 시사점’에 따르면 “담배 및 배출물의 성분 공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규제의 기준 및 범위를 정하기 위해서는 담배와 배출물에 어떠한 성분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성분 공개와 분석에 관한 법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에 어떤 성분을 규제하고, 어떤 성분을 허용할지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18년 궐련형 전자담배와 2019년 및 2020년 액상형 전자담배의 유해성분을 분석·공개한 바 있으나 수많은 유해성분 중 무엇이 얼마나 담배에 들어 있는지를 정부가 모두 파악하기에는 현실적 한계가 존재한다.
담배에는 4000여 가지의 유해물질이 포함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현행법에 따라 공개하는 발암물질에 관한 정보는 나프틸아민, 니켈, 벤젠, 비닐클로라이드, 비소, 카드뮴과 같이 6가지에 불과하고 담배 한 개비 연기에 포함된 것으로 표시되어야 할 주요 성분은 ‘타르와 니코틴’ 단 2종에 불과하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