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가뭄과 폭염으로 바짝 말라가는 독일·체코 등 유럽의 강에서 ‘헝거스톤(Hunger Stones)’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로이터통신과 영국 일간 가디언 등 외신은 지난 20일(현지시간) 라인강의 독일 유역을 따라 ‘헝거스톤’들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라인강에서 발견된 헝거스톤에는 가뭄이 심각했던 1947년, 1959년, 2003년, 2018년의 연도가 기록돼 있다.
헝거스톤은 강 수위가 역대급으로 낮아졌음을 알리는 돌이다. ‘배고픔의 돌’이라는 기존의 이름 외에도 ‘슬픔의 돌’로도 불린다. 가뭄의 정도가 심각했던 해의 연도, 가뭄을 일으킨 기후 재앙에 대한 경고 문구가 새겨져 있다. 유럽의 라인강, 다뉴브강, 모젤강, 엘베강 곳곳에 헝거스톤 수십 개가 있다.
앞서 독일과 체코 사이를 흐르는 엘베강에서는 1616년에 만들어진 가장 유명한 헝거스톤도 나타났다. 이 돌에는 ‘내가 보이면 울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가뭄으로 인한 굶주림, 흉작에 대한 경각심을 후손에게 일깨워주려는 목적으로 해석된다.
이번 가뭄은 제2차 세계대전의 상흔도 드러냈다. 유럽에서 두 번째로 긴 다뉴브강의 수위가 약 100년 만에 최저로 떨어지면서 세르비아 항구도시 프라호보 근처에서 탄약이 실린 채 침몰한 독일 군함 20척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이탈리아의 포강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된 450㎏의 거대 포탄이 나타났다.
유적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스페인의 발데카나스 저수지는 수위가 전체 용량의 28%로 떨어지면서 ‘과달페랄의 고인돌’의 유적 전체를 볼 수 있게 됐다. 이렇게 고인돌의 모습이 한 눈에 담긴 건 1963년 유적이 침수된 뒤 4번째다.
로마 티베르강에서는 1세기 때 네로 황제가 건설한 것으로 추정되는 다리의 잔해가 발견됐다. 이 다리는 네로 황제가 강 건너편의 어머니 별장을 쉽게 방문하기 위해 건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연합(EU)은 극심한 가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안드레아 토레티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연합연구센터 연구원은 “향후 3개월간 건조한 상태가 지속될 위험이 매우 큰 상황”이라며 “효과적으로 피해를 완화할 대책이 없으면 유럽 전역에서 가뭄이 더 심하게 자주 닥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민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