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들이 최근 루마니아로 이동하기 전 모처에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현지 한인 선교사의 도움으로 루마니아로 이동한 이들은 30일과 4월 1일 두 차례에 걸쳐 한국에 입국할 예정이다. 광주고려인마을 제공
“저는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나요. 도와주세요 제발….”
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 동포 김류사(70·여)씨의 호소다. 그가 살던 우크라이나 므콜라이우(니콜라예프)는 최근 러시아의 폭격으로 잿더미가 됐다. 김씨는 가방 하나와 신분증만 챙겨 접경 국가인 몰도바를 거쳐 루마니아로 피신한 상태다.
고려인 난민 입국 돕는 ‘천사들’
그의 하소연을 들어준 이는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광주고려인마을 신조야(67·여) 대표다. 교회 권사이기도 한 그는 고려인마을교회 이천영(64) 목사와 함께 20년 넘게 광주에 터를 잡은 고려인들의 정착을 돕고 있다. 이들은 요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탈출한 고려인의 한국 입국을 돕는 데 눈코 뜰 새가 없다.
2000년대 초반 광산구 산정공원로에 들어선 고려인마을엔 현재 7000여명의 고려인이 살고 있다. 고려인은 구소련 붕괴 이후 독립국가연합 국가들에 거주하는 한민족 동포를 말한다. ‘카레이스키’로도 불리는 이들은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몰도바 등의 출신도 포함한다. 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은 현재 300여명 정도가 고려인마을에 머물고 있다. 이들 가족과 친지 가운데 피란민으로 전락한 이들이 한국행을 위해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고려인 출신 피란민은 몰도바를 거쳐 루마니아에서 항공편으로 한국행을 원하고 있다. 지난 13일에는 광주고려인마을에 거주하는 고려인의 손자(13)가 무사히 입국했다. 한국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 가족이 전란을 피해 입국한 첫 번째 사례였다.
입국이 성사되기까지는 광주고려인마을 ‘천사들’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신 대표는 2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현지에 있는 고려인들이) 갑작스러운 피란길에 오르다 보니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막상 한국에 들어오려 해도 비행기 삯이 없어 애태우고 있다”고 전했다.
‘맨땅에 헤딩’하듯 모금
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 동포 남아니타(10)양이 광주고려인마을의 도움으로 지난 22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해 할머니 품에 안기고 있는 모습. 광주고려인마을 제공
한국행을 원하는 피란민을 위한 수송 작전은 대략 이렇게 진행된다. 피란민은 스마트폰에 설치한 왓츠앱이나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 등을 활용해 고려인마을 측과 소통한다. 신 대표와 이 목사는 이들의 신분과 여권·비자 소지 여부 등을 확인한 뒤 모금을 통해 항공권을 구입, 이티켓(e-ticket)을 메신저로 발송해 입국을 돕는다. 이 목사는 “지원 대상자가 생길 때마다 모금에 나서지만 얼마나 걷힐지는 아무도 모른다. ‘맨땅에 헤딩’하듯 모금하는데 그때그때 기도하며 하나님께 맡기고 있다”면서 “십시일반 도와주는 단체와 기업, 후원자들께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고려인마을은 30일과 다음 달 1일 대규모 입국을 준비하고 있다. 아동과 청소년, 여성 등 31명이다. 이들 고려인은 30일(21명)과 4월 1일(10명) 잇따라 입국한다. 러시아 침공 사태 이후 우크라이나 고려인의 집단 입국은 처음이다.
이들은 현지 한인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루마니아 남쪽 콘스탄차에 있는 베델순복음교회에 머물고 있다. 갈 곳 없는 난민을 품어주는 이도, 이들의 한국행을 돕는 이들 모두 선교사와 목회자, 권사, 집사로 불리는 크리스천이다. 이 목사에 따르면 현재 루마니아 등으로 피신한 뒤 한국행을 희망하는 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은 300~400명에 달한다. 그는 “‘우는 자와 함께 울어주는’ 이웃이 돼 달라”고 호소했다.
교계 “한국, 난민 수용” 촉구
교계 안팎에서는 한국이 우크라이나 난민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이상학 새문안교회 목사는 “10대 경제대국 가운데 러시아와 가까운 중국과 인도를 제외하면 한국만 우크라이나 난민을 받지 않고 있다”면서 “인도적 차원에서 국가가 적극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한국YWCA연합회(회장 원영희)도 성명을 내고 “유엔난민기구는 우크라이나 난민 상황을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빠른 증가율을 보인 난민 위기로 규정하고 있다”면서 “한국 정부가 난민 수용과 인도적 지원을 통해 국제 사회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