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1주년을 앞두고 미국과 러시아가 서로를 향해 “상대가 질 수밖에 없는 전쟁”이라며 격돌했다. 미국은 이번 전쟁을 민주주의와 자유 등 보편 가치를 위한 싸움으로, 러시아는 서방의 위협으로부터 국가 안보와 존립을 지키기 위한 싸움으로 규정하며 맞붙었다. 양측이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으로 배수진을 치면서 전쟁 양상이 생존 게임으로 바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폴란드 왕궁 정원의 쿠비키 아케이드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의 승리가 되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이 전쟁을 선택했고, 전쟁이 매일 계속되는 건 그의 선택”이라며 “그는 말 한마디로 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중단하면 전쟁이 끝나지만, 우크라이나가 방어를 중단하면 우크라이나의 종말이 된다”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우리 지원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있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대한 미국의 공약과 (집단방위인) 5조가 견고하다는 데에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은 “러시아를 전장에서 패배시키는 건 불가능하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연설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푸틴 대통령은 전날 “미국 프랑스 영국이 핵무기를 러시아에 겨냥하고 있다”며 서방이 러시아를 무너뜨리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서방이 지역 분쟁을 글로벌 분쟁으로 확대하려 한다”며 “우크라이나에서 확전 책임은 서방 엘리트에게 있다”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은 핵군축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뉴스타트) 참여 중단까지 선언하며 긴장을 높였다.
가디언은 “바이든과 푸틴은 상대가 질 수밖에 없다며 전쟁의 결과를 자신의 미래와 연결했다”며 “생존 전쟁으로 격상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 연설을 놓고 외신은 “세계 질서의 반대편 끝에 있는 지도자들의 결투 비전”(뉴욕타임스), “전쟁 1주년을 앞두고 완전히 다른 세계관”(파이낸셜타임스) 등의 평가를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는) 강간을 전쟁 무기로 사용했고, 민간인을 죽음과 파괴의 표적으로 삼았다”며 “누구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저지른 만행을 외면할 수 없다. 혐오스럽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자행한 반인도 범죄를 단죄하기 위해 이번 주 서방이 또 다른 제재를 발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푸틴 대통령은 “서방은 우리 경제를 패배시키지 못했으며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가디언은 “바이든 대통령이 연설한 쿠비키 아케이드는 2차 세계 대전 때 비극적으로 파괴돼, 잿더미 속에서 재건된 곳”이라며 “우크라이나의 부활을 상징한다”고 분석했다. 광장에는 일반 시민이 가득 찼고, 바이든 대통령의 등장과 퇴장 때는 노르웨이 DJ 카이고의 프리덤(Freedom), 콜드플레이의 어 스카이 풀 오브 스타즈(A Sky Full of Stars) 등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반면 푸틴 대통령은 모스크바 중심지에 있는 전시장 고스티니 드보르에서 상·하원 의원과 군 지휘관, 병사들을 상대로 국정연설을 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