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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북한’ 에리트레아, 협정 직전 수백명 학살


지난해 에티오피아 중앙정부와 티그라이 지역정부(TPLF) 평화 협정 체결 직전 TPLF에 적대적인 에리트레아군에 의한 민간인 집단 학살이 이뤄졌다는 증언이 나왔다. 에리트레아군이 마을 주민 수백 명을 학살한 정황이 당시 위성사진에 고스란히 포착됐다.

워싱턴포스트(WP)는 28일(현지시간) 에리트레아군의 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은 15명의 목격자와 피해자 유족들 22명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유족 동의를 받아 에리트레아군에 의해 살해된 피해자 18명의 사진도 함께 실었다. 생존자들은 에리트레아군이 지난 1월 말까지 티그라이 인근 지역에서 주둔했던 탓에 지금에서야 학살 사실을 고발한다고 했다.

이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에리트레아군은 평화 협정일인 지난해 11월 2일 직전 주에 티그라이 고원 지대인 아드와 인근 10개 마을을 습격했다. 전투에서 패배해 분노에 찬 상황에서 협정 분위기가 조성되자 보복을 강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에리트레아는 ‘아프리카의 북한’으로 불리는 군국주의 독재국가다. 이들이 1998∼2000년 에티오피아와 국경 분쟁을 벌일 당시 에티오피아 정부를 이끈 세력이 지금의 TPLF다. 이 때문에 에리트레아는 TPLF를 숙적으로 간주한다. 2020년 11월 발발한 티그라이 내전에 개입해 에티오피아 중앙정부 편에 서서 TPLF 측과 교전을 벌여온 이유도 그래서다. 에리트레아군은 개전 당시에도 악숨에서 하루 새 민간인 수백 명을 학살했다는 혐의를 받아 전쟁 범죄 가해자로 지목된 바 있다.

한 목격자는 “한 어린 소년이 어머니, 7살 동생과 함께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어린 아들들 앞에서 어머니를 살해하고 아버지를 구타하기도 했다”고 WP에 말했다. 다른 피해 마을 주민은 “집에 돌아와 보니 문은 활짝 열려 있고 집 안 바닥은 피로 검게 물들어 있었다. 마을의 공기는 죽음의 악취로 가득 차 있었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산에서 반쯤 먹힌 시체들 사이에서 형제와 남편을 찾아 헤맸다”고 했다.

살해당한 한 피해자의 친척은 “에리트레아 군인들이 집 안에서 그를 쐈다”며 “그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 두 딸, 사위, 며느리, 15세 손녀까지 모두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심지어 며느리의 경우 에리트레아군이 들이닥칠 당시 생후 5개월 된 아이를 등에 업고 있었다”며 “아이를 내려놓으라고 말한 뒤 모든 자식이 보는 앞에서 엄마를 해쳤다”고 했다.

생존자들은 숨어 있다가 가족, 동료들을 찾았을 때 이미 많은 시신이 동물에 부분적으로 훼손된 상태였다고 했다. 한 실향민은 “어떤 시신은 얼굴이 남아있었고, 어떤 시신은 팔다리만 남아있었다”고 회상했다.


에리트레아군의 이번 학살 사실을 입증할 만한 증거는 위성사진에 그대로 담겼다. 미국의 위성 분석 업체 ‘플래닛 랩스’가 WP에 제공한 자료 사진을 보면 당시 해당 지역에 있는 건물 최소 67개가 심하게 훼손된 모습이 확인된다. 대부분 민간인이 거주하는 가정집들이다. WP는 생존자와 유족들의 증언과 위성사진을 통해 학살당한 민간인 수를 300여명으로 추정했다.

다만 에리트레아 정부는 민간인 학살을 비롯해 전쟁 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다.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 에리트레아 대통령은 지난달 9일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의혹들을 언급하며 “환상과 거짓말, 조작”이라고 반박했다.

에티오피아 법무부 측 고위 관리는 에리트레아군의 민간인 학살과 관련한 WP의 물음에 구체적으로 답변하지 않았지만 “전쟁 중 모든 학대 행위에 대한 책임, 구제 문제와 관련해 티그라이 6개 지역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국민의 의견을 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0년 11월 4일 시작 돼 2년간 이어진 에티오피아 내전은 적게는 38만명, 많게는 60만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WP는 “남겨진 많은 이들이 11월 휴전을 기뻐하고 있지만 집단 학살 사건의 생존자들은 아직도 사망한 자들에게 둘러싸여 살고 있다”고 강조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