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하원 표결을 건너뛰고 연금 개혁 강행에 나서면서 노동계의 대정부 투쟁 강도도 높아지고 있다. 프랑스 전역에서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시위가 나날이 과격해지는 양상이다.
프랑스 언론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국무회의를 열고 긴급법률제정권을 사용해 연금개혁을 강행하기로 했다. 프랑스 헌법 49조 3항에 명시된 긴급법률제정권은 비상대권의 하나로 하원 표결 없이 국무회의 의결만으로 법률을 제·개정할 수 있는 권리다. 하원이 긴급법률제정권을 무력화하려면 발동 후 24시간 내에 정부 불신임 결의안을 의결해야 하지만 통과 가능성은 매우 낮다.
프랑스 야당들은 이날 마크롱 대통령의 ‘의회 패싱’에 맞서 절차에 따라 불신임안을 제출하기 시작했다. 불신임안은 하원 577석의 과반인 289석 찬성으로 가결되는데, 마크롱이 이끄는 집권당이 250석을 보유한 데다 61석을 지닌 중도우파 공화당도 불신임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헌법 제49조 3항을 사용해 하원 투표를 건너뛰고 연금 개혁을 강행하는 것은 안 그래도 불만이 팽배하던 민심에 기름을 끼얹은 모양새다. 실제로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가 하원에서 연금 개혁 법안 표결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뒤 파리, 마르세유, 낭트 등 24개 도시에서 시위가 발생했다. 예고도 없었던 것이지만 6만 명이 운집했다.
특히 1만 명으로 가장 많은 인파가 모인 파리에서는 하원 맞은편에 있는 콩코르드 광장에서 애초 평화롭게 시위가 펼쳐지다가 저녁부터 과격해지기 시작했다. 경찰은 돌을 던지는 등 폭력을 사용하는 시위대에 최루가스와 물대포로 대응했다. 일부 시위자들은 “마크롱 하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진압 경찰에 맞섰고 길가에 불을 지르거나 상점을 파손하기도 했다.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부 장관은 RTL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경찰이 파리에서 258명을 포함해 프랑스 전역에서 310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특히 디종에서 벌어진 시위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보른 총리, 장관들의 모형이 불에 탔고 공공건물들이 표적이 됐다고 비판했다.
프랑스 주요 노조가 이번 주말과 다음 주 쟁의를 예고하고 있어 연금 개혁 반대 시위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에너지 분야 노동자들은 18∼19일이나 늦어도 20일에는 프랑스 최대 정유소 중 한 곳에서 생산을 중단하기로 했고, 운수 노조와 교사 노조도 다음 주 파업하기로 했다.
한편 마크롱 대통령은 올 1월 연금 개혁안을 발표하고 이를 핵심 국정과제로 밀어붙이고 있다. 현재 62세인 정년을 64세로 연장하는 한편 연금 상한액을 수령하는 데 필요한 근로 기간도 42년 이상에서 43년 이상으로 늘어난다. 고령화와 조기 퇴직으로 인한 연금 재정 고갈을 막기 위해서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