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토크쇼 진행자 필 도나휴가 별세했다.
향년 88살이다.
NY Times와 CNN 등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필 도나휴가 어제(8월18일) 일요일에 NY 맨해튼 Upper East Side에 있는 자택에서 사망했다고 오늘(8월19일) 일제히 탑뉴스로 보도했다.
필 도나휴 사망은 가족 대변인 수전 애런스에 의해 발표됐다.
NY Times는 1967년 중부 Ohio 주 Dayton에 있는 지역 방송 WLWD-TV에서 데뷔한 필 도나휴가 29년 동안 토크쇼 호스트로 낮 시간을 지배했으며 누구의 도전도 받지 않은 토크쇼의 제왕이었다고 평가했다.
필 도나휴는 미국 토크쇼 역사를 새로 쓴 위대한 진행자로 꼽힌다.
무엇보다 방청석 청중들을 쇼의 일부로 끌어들인 것이 바로 필 도나휴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다.
필 도나휴가 토크쇼 진행자로 데뷔하던 1960년대만 하더라도 토크쇼는 전형적 포맷을 갖추고 이뤄지는 그들만의 쇼였다.
진행자가 오프닝을 하면서 홀로 말을 하고, 보조 진행자와 게스트 등이 함께 앉는 긴 소파, 그리고 음악을 들려주는 밴드가 토크쇼의 전형이었다.
관중들은 연출진이 박수치라고 권하지 않는 한 조용히 쇼를 지켜만 보는 것이 당연한 관례였다.
그런 분위기를 깬 것이 바로 필 도나휴였다.
마이크를 손에 들고 통로를 돌아다니며 방청객들을 만났고 청중들 질문이나 의견을 계속 쇼에 반영하는 모습으로 ‘필 도나휴 쇼’를 단순 토크쇼에서 참여형 이벤트로 바꿔버렸다.
오프라 윈프리 등 후에 나온 후배 토크쇼 진행자들은 모두 필 도나휴라는 거대한 진행자 영향력 아래 나온 아류들이었다.
필 도나휴는 1960년대 인권과 국제 관계 등 단호하고 고상한 주제부터 남성 스트리퍼, 안전한 섹스 등 저속한 주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에 대해 방청객들의 질문과 의견을 게스트에 전달했다.
심지어 집에서 TV를 보는 시청자들에게 전화해서 전화 연결로 의견과 질문을 듣는 방식으로까지 발전했다.
방청객들의 목소리를 담아서 현장 민주주의를 대변했고, 전화선을 통해 집에 있는 사람들 의겨까지 담아내 전자 민주주의가 도래했다는 것을 실감나게 보여줬다.
필 도나휴가 자신의 토크쇼를 방청객 참여형으로 바꾼 것은 전적으로 스스로 그렇게 판단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토크쇼를 하는 도중에 광고가 나갈 때 방청객들과 대화하기를 즐기던 필 도나휴는 그 일부가 자신보다 더 날카로운 질문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마이크를 들고 방청석을 누비기 시작했고 필 도나휴 쇼 전설의 시작을 열게된 것이다.
필 도나휴의 또 하나 위대한 점은 주제에 제한이 없었다는 것이다.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 마다 항상 직원들에게 모든 주제를 화제로 삼아 쇼를 하고 싶다고 말한 필 도나휴였다.
그래서 필 도나휴 쇼에는 무신론자, 대선 후보, 헐리웃 스타, 소비자 옹호자, 페미니스트 선구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출연했다.
1980년대 에이즈 전염병을 탐구한 최초의 TV 진행자였고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 발생 이후에 그곳을 방문한 최초의 서방 언론인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필 도나휴는 섹스와 동성애 등을 많이 다뤘는데 일각에서 예전 쇼 모습이 아니라 많이 저속해졌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필 도나휴는 TV 등 언론 매체는 인기를 쫒는다며 죽은 영웅이 되고 싶지 않다고 반박하며 토크쇼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아무리 고상하고 품격있는 쇼를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듣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처럼 필 도나휴는 미국 TV 토크쇼 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로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