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중순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에서 1964년 지어진 방 5개짜리 낡은 주택이 80만5000달러에 팔렸다. 주변 시세보다 10만 달러 정도 비싼 가격이다.
판매 에이전트는 집을 매물로 내놓으면서 ‘미닫이문과 카펫 교체 필요’ ‘식기세척기 파손’ ‘변기 누수’ ‘창틀 부식’ 등의 상태를 공개했다. 수리비용은 2만5000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판매자가 올린 주택 외양에는 곰팡이가 가득했다.
에이전트가 공개한 더 충격적인 정보는 불법 거주자 체류 사실이었다. 집주인은 장기 입원 환자였고, 3년 전 집 관리를 위해 청소부를 고용했다. 해당 여성에게서 ‘머물 곳이 필요하다’는 부탁을 받고 지하실을 내줬는데, 이후 임대료도 내지 않고 집을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거액의 수리비가 필요하고, 퇴거 소송까지 진행해야 하는 골치 아픈 거래는 그러나 매물 등록 5일 만에 완료됐다. 5명이 현금 거래를 제안했고, 입찰을 벌여 5000달러 웃돈까지 얹어 준 사람에게 거래가 승낙됐다. 미국 주택 시장이 얼마나 왜곡돼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인플레이션과 원자재 가격 폭등, 공급망 대란이 미국의 주거 위기를 키우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주택가격과 임대료, 대출금리 동반 상승으로 주거비 폭등이 현실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층과 저소득층에 피해가 집중되고 있다.
국민일보가 30일(현지시간)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 1분기 미국에서 거래된 신규 주택 중간값은 42만8700달러로 지난해 동기(36만9800달러) 대비 15.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도시가 집중된 북동부(56만3200달러)와 서부(55만7200달러)는 전년 대비 증가폭이 각각 10.0%, 17.7%였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택이 많은 중서부 지역(40만6800달러)이 26.9% 오르며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미국 전체 신규 주택 평균가격은 50만7800달러로 지난해 1분기(41만8600달러)보다 21.3% 올라 증가폭이 더 컸다.
주택가격 과열은 지난해 이미 경고등이 켜졌는데 이런 분위기가 올 초 더욱 심화했다. 주택시장 과열 지표인 S&P 케이스-실러 주택가격지수는 지난 2월 전년 동기 대비 19.8% 상승했다. 35년 전 지표 집계를 시작 이후 역대 세 번째로 높은 상승폭이다. 지난 1월에도 주택가격지수는 19.1%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는데, 상승폭이 더 커진 것이다.
20개 도시 주택가격지수는 20.2% 높아졌다. 피닉스(32.9%), 탬파(32.6%), 마이애미(29.7%)가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공급은 부족한데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대출금융기관인 프레디맥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수요 증가로 전국에 약 400만 채의 주택이 부족한 것으로 추정했다. 여기에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본격적 긴축 신호를 보내자 금리 인상 전 주택을 사려는 수요자가 더 몰려 가격이 급등했다.
하지만 대출금리 인상이 시작된 이후에도 이런 분위기가 잠잠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30년 만기 모기지 이자율은 지난 28일 5.1%로 지난해 12월 29일 3.11%보다 1.99% 포인트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봉쇄정책 등으로 공급망 압박이 지속하고, 원자재 가격도 오르면서 주택 공급이 계속 더디게 진행돼 가격 고공행진이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레드핀 수석 이코노미스트 대릴 페어웨더는 “판매자와 구매자 감소가 같은 비율을 유지하기 때문에 (주택 구매를 위한) 입찰 전쟁이 줄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수요와 공급이 같은 속도로 줄면서 가격을 떠받치고 있다는 것이다.
전미 주택건설협회(NAHB)는 지난주 “원자잿값 급등으로 비용이 급등하고 있어 저렴한 주택 공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평범한 미국인이 평범한 집을 살 수 없는 바람직하지 않은 일들이 계속 악화할 것”이라는 서한을 백악관에 보냈다.
불똥은 첫 구매자와 대학생, 저소득층 등으로 튀고 있다. 생애 첫 집을 구하려는 구매자들은 높은 집값과 대출금리 상승 압박을 동시에 받고 있다. 여기서 탈락한 구매자들이 다시 임대 시장으로 눈을 돌리면서 월세 상승을 이끌고 있다. 미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35세 미만 가구주 중 62%가 월세를 살고 있다.
1921년 완공된 워싱턴DC의 방 4개짜리 타운홈은 전날 월세 7950달러에 매물로 나왔다. 2020년 8월에는 월세가 5750달러였던 매물이다. 증가폭이 38.3%다. 비슷한 시기 완공된 조지타운대 인근의 타운홈은 월세가 1만 달러를 넘긴 곳이 나오기 시작했다. 원베드룸 매물도 3500달러에 올라왔다.
부동산 중개업체 레드핀에 따르면 오리건주 포틀랜드(40%), 텍사스주 오스틴(38%), 뉴욕(35%), 뉴저지주 뉴브런즈윅(35%),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웨스트팜비치(33%) 등 주요 도시 월평균 임대료는 지난 3월 전년 대비 30% 이상 급증했다.
미국 전체의 월평균 임대료는 전년 대비 17% 상승한 1940달러다. 2020년 2월 이후 상승폭이 가장 크다. 부동산 리서치 회사인 코스타 그룹에 따르면 미국 임대료는 지난해에도 전년 대비 11.3% 증가했다.
미국 저소득주택연합은 최근 보고서에서 “이제 최저 임금 근로자가 방 2개짜리 집을 임대할 수 있는 도시나 카운티는 단 한 곳도 없게 됐다”고 분석했다. 워싱턴의 싱크탱크 초당파 정책연구센터 데니스 셰이 이사도 “수급 불일치로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게 됐다. 저소득 가정이 임대료 인상과 공급 부족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자재 부족과 건설 지연으로 새 주택과 임대 주택의 공급이 느려지고 있다”며 “모기지 이자율 상승이 주택 구매자를 임대 시장으로 내몰기 때문에 저렴한 임대 부족은 앞으로 몇 개월 동안 더욱 악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