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포위 전략에 맞서 태평양 섬나라들과 포괄적 안보·경제 협정을 맺으려던 중국의 시도가 일단 실패했다. 일부 국가가 이번 협정 체결로 최악의 경우 세계 대전이 벌어질 수 있다며 중국의 구상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30일 피지에서 제2차 중국·태평양 도서국 외교장관 회의를 주재했다. 중국과 솔로몬제도, 키리바시, 사모아, 피지, 통가, 바누아투, 파푸아뉴기니, 니우에, 쿡제도, 미크로네시아 등 태평양 10개 도서국 외교장관은 회의에서 안보와 경제 협력을 망라한 포괄적 개발 비전을 논의했지만 협정 체결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AP통신은 미크로네시아가 이견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데이비드 파누엘로 미크로네시아 대통령은 최근 다른 정상들에게 서신을 보내 “(중국과의 협정 체결은) 지정학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지역 안정을 위협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특히 이번 협정을 “우리 생애 태평양에서 게임의 판도를 가장 크게 바꾸는 단 하나의 합의”라며 “잘못하면 신냉전 시대, 최악의 경우 세계 대전을 불러올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AFP통신도 일부 국가가 중국의 영향권으로 급속히 빨려 들어가는 상황을 우려했다고 전했다.
중국은 포괄적 개발 비전을 계속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외교장관 회의에서 각측은 관련 문건에 대해 새로운 공동 인식에 도달했고 최종 합의 도달을 향한 중요한 한 걸음을 내디뎠다”고 평가했다. 이어 “각측은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토론을 통해 더 많은 공동 인식에 도달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고 덧붙였다.
왕 부장은 지난 26일부터 열흘 일정으로 태평양 섬나라 8개국을 방문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최근 한국, 일본 순방을 계기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를 출범시키고 쿼드(Quad) 정상회의를 개최한 데 따른 맞대응으로 해석됐다.
특히 왕 부장이 방문한 키리바시는 중국이 군사기지화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곳이다. 키리바시 캔턴섬에 위치한 활주로는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가 있는 하와이에서 불과 3000㎞ 정도 떨어져 있다. 하지만 중국이 남태평양 국가들과 협정 체결에 실패함에 따라 이런 움직임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