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포를 비롯해 10억 달러(1조3000억원) 규모의 무기 지원 방침을 밝혔다. 유럽연합(EU) 핵심 국가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정상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표하기 위해 수도 키이우를 직접 방문했다.
그러나 전쟁을 바라보는 서방의 속내는 복잡하다. 전쟁 장기화로 인한 피로감과 함께 최악의 인플레이션 등 세계 경제 침체 속에 종전 또는 휴전 협상을 비롯한 ‘출구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10억 달러 규모의 추가 군사지원을 약속했다고 백악관이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추가 대포와 포탄, 해안 방어용 무기, 돈바스 지역에서 방어 작전을 지원하기 위한 첨단 로켓 시스템 등을 비롯해 10억 달러의 무기를 추가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는 16일 오전 열차 편으로 키이우에 도착해 젤렌스키 대통령과 만났다. 마크롱 대통령은 “러시아가 공격한 현장에 방문할 것”이라며 “이는 중요한 순간이며, 우크라이나를 향한 유럽의 단결을 의미하는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겉으로는 우크라이나 지원과 지지 의사를 내비치고 있지만 복잡한 속내도 감지된다. 미국의 경우 이미 전쟁 비용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지난 2월 전쟁 시작 이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군사 지원 규모는 57억 달러(7조3000억원)에 달한다. 이 때문에 재정 부담 등을 이유로 러시아가 이미 점령한 우크라이나 일부 지역을 포기해야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유럽에서도 전쟁 출구 전략을 두고 분열되고 있는 양상이다. 실제 전쟁을 바라보는 유럽 여론은 양분되고 있다. 싱크탱크 유럽외교협의회(ECFR)가 전날 발표한 유럽 주요국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 참여자 35%가 ‘전쟁을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한다’고 답했다. 반면 러시아에 대한 응징을 우선순위로 꼽은 대답은 22%에 그쳤다.
유럽인들은 특히 전쟁 여파로 에너지, 곡물가가 치솟자 생계 고통을 체감하기 시작했다고 EDFR 보고서는 지적했다. CNN은 “미국, 유럽의 일반 시민이 전쟁 비용에 직접 영향을 받고 언론의 관심이 멀어지기 시작하면 서방의 지원은 약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뉴욕타임스도 “유럽 지도자들이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위한 집단적 전략을 포기해야 한다는 압박을 점점 더 많이 받는다”고 전했다.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세 정상이 키이우를 방문해 유럽의 단결을 강조했지만 실제로 행동으로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세 국가는 러시아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크라이나를 위한 무기 지원에도 적극적이었던 미국, 영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대화를 통한 사태 해결에 더 무게를 싣는 입장을 보여 왔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