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의 낙태권 폐지 판결로 인한 후폭풍이 거세다. 처방이 필요 없는 사후피임약 수요가 증가하자 일부 유통업체는 사후피임약 판매 수량 제한에 나섰다. 각 주에서는 낙태권 조항을 둘러싼 소송전이 난무하고 있고, 민주당은 낙태권을 연방 차원에서 법률로 보장하기 위한 입법 드라이브에 착수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7일(현지시간) 낙태권 폐지 판결의 영향으로 미 전역에서 ‘플랜B’로 분류되는 사후피임약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미 유통업체들이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사후피임약에 대한 배급제를 시행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낙태에 관한 약은 처방전이 필요한 ‘플랜C’인 낙태약과 플랜B인 사후피임약이 있다. 낙태약은 임신 10주 내로 낙태를 할 때 쓰이고, 사후피임약은 관계 후 72시간 내로 복용해야 한다.
약국 체인점을 운영하는 CVS 헬스 코프는 의사의 처방전 없이 구매할 수 있는 사후피임약의 고객 1명당 판매 수량을 3알로 제한했다. CVS 관계자는 “약에 대한 여성들의 공정한 확보를 보장하기 위해 임시 구매제한 조치를 시행했다”며 “다행히 매장과 온라인에서 공급이 충분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업체인 라이트 에이드 코프도 수요 증가를 이유로 1명당 구매할 수 있는 사후피임약 수를 3알로 제한했다고 밝혔다.
현재 사후피임약의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세계 최대 온라인 소매업체 아마존에 다양한 피임약이 구비돼 있었지만 대부분 7월 중순 이전에는 배달할 수 없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낙태권 폐지 판결 이후 사후피임약을 판매하는 일부 회사의 매출은 크게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낙태약 또한 미국에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낙태권을 둘러싼 소송전도 잇따르고 있다. 보수세가 강한 루이지애나주에서는 법원이 ‘트리거 조항’에 근거해 ‘낙태금지법’을 즉각 시행하라고 결정하자 시민단체가 트리거 조항 시행을 막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 애리조나와 유타, 플로리다주에서도 트리거 조항을 문제 삼은 소송이 이어졌다.
다만 실제 트리거 조항의 시행을 막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AP통신은 법원이 낙태 금지에 관한 규제를 일부 차단하더라도 보수 성향의 각 주의회가 움직일 경우 시민단체 소송은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가디언도 트리거 조항을 둘러싼 소송은 그 효과가 시간을 끄는 데 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낙태권을 연방 차원에서 법률로 보장하기 위한 입법 검토에 착수했다. 펠로시 의장은 “현재 미국인이 누리고 있는 자유를 추가로 조문화하기 위한 입법 작업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원 의석 구조상 법안이 의회 문턱을 넘을 가능성은 적다. 민주당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여성 인권 문제를 선거 쟁점으로 부각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