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환율 리스크 공포에 휩싸였다.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 우려 속에 미국 통화 가치는 ‘나 홀로’ 상승을 지속하며 이제 ‘킹 달러’ 대접까지 받고 있다. 물가 잡기에 올인하고 있는 미국이 달러 강세를 용인, ‘비싼 달러의 시대’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는 24일(현지시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다음 달 회의에서 ‘자이언트스텝’(한 번에 0.75% 포인트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을 60%로 예측했다. ‘빅스텝’(한 번에 0.5% 포인트 금리 인상) 전망은 39.5%에 그쳤다. 지난 17일에는 빅스텝 전망이 60%였는데 한 주 만에 예측이 뒤바뀌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오는 26일 ‘잭슨 홀 미팅’에서 물가를 잡기 위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할 가능성이 크다는 예측이 나왔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로 안전자산 쏠림 현상이 확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금리인상은 달러 강세를 더 강화할 수 있다.
다이내믹 이코노믹 스트래티지의 존 실비아 최고경영자(CEO)는 “달러 강세는 연준 정책에 의한 부수적 효과이고, (인플레이션을 낮추려는) 연준에는 간접적 이득이 된다”고 말했다. 연준의 금리인상이 달러 강세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는데, 그로 인해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효과까지 얻게 됐다는 의미다.
실제 최근 공개된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을 보면 회의 참석자들은 달러 가치 상승이 수입물가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쳐 인플레이션 완화에 도움이 된 것으로 판단했다.
이런 가운데 미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연은)은 최근 “인플레이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려면 훨씬 더 큰 달러 절상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도 발표했다.
캔자스시티 연은은 “지난해 5월 이후 달러는 주요 26개국 통화 대비 8.5% 이상 절상됐다”며 “그러나 최근 미국 달러 강세로 인해 핵심 개인소비지출(PCE)은 연 0.16% 포인트(지난 6월 기준)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수입품이 외화로 청구되면 달러 강세가 가격을 낮춰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되는데, 대부분 달러로 청구돼 가격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캔자스시티 연은은 “2013~2015년 달러 가치가 25%가량 상승하면서 핵심 PCE 인플레이션이 0.53% 포인트 낮아졌다”며 “달러 가치가 지금보다 5% 추가 상승하면 인플레이션을 연 0.33% 포인트 낮출 수 있다. 여전히 (효과가) 낮다”고 예측했다.
로이터통신은 “연준의 정책 입안자들이 이러한 견해를 공유한다면 지금의 환율을 만족해하고, 더 강세를 보이더라도 개의치 않을 것”이라며 “평가 절상 속도가 완만해 광범위한 금융 시장 혼란을 촉발하지 않는 한 이를 환영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올해 들어 13.5% 올랐다. 1984년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하지만 이보다 달러 가치 절상이 확대돼도 연준이 이를 문제 삼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1유로 가치가 1달러 밑에서 머무르는 유로화 약세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에너지 가격 상승 압박을 받는 유럽에 다시 겨울이 찾아오면 경기침체 그늘이 더 깊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위르겐 몰나 로보마켓 투자전략가는 “에너지 위기와 경기침체 우려 고조 속에 유로화는 상당 기간 1달러 아래에서 머물 것”이라며 “유로화 가치는 더욱 뚜렷이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