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현지시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크렘린궁 앞 ‘붉은광장’. 가벼운 옷차림의 모스크바 시민들은 광장 한복판에 도열한 각국 군악대의 연주에 열광하고 있었다.
러시아 중국 베트남 이집트 등의 군악대가 참가한 세계군인축제는 군악은 물론 댄스곡까지 연주하며 시민들의 흥을 돋았다. 일요일 휴일을 즐기는 모스크바 시민들의 얼굴엔 무려 6개월 이상 이어진 우크라이나전쟁의 긴장 같은 건 엿볼수가 없었다. 밤이 되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집무실이 위치한 크렘린궁과 바로 앞 성바실리대성당 위의 하늘은 형형색색의 불꽃탄이 수놓고 있었다.
같은 시간 모스크바 외각 니콜라레니베츠 예술공원에는 1만6000여명의 젊은이들이 모여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숲 한가운데 자리잡은 이 공원에는 나흘째 러시아 전역에서 모여든 패셔니스타들이 전위예술, 대중음악, 미술 등의 공연을 즐기며 밤새 술을 마시고 있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6일 ‘모스크바에 전쟁은 없다’는 제목의 르포 기사를 게재했다. 러시아 동맹국들만 참가한 세계군인축제를 동행하며 취재한 발레리 홉킨스 기자에 따르면, 러시아군이 서방제 무기로 무장한 우크라이나군에 밀려 우크라이나 남동부 전선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와중에도 모스크바 시민들은 전쟁과 전황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세계군인축제를 보기 위해 붉은광장을 찾은 한 모스크바 시민은 홉킨스 기자의 질문에 “전쟁이야 당연히 우리가 이길 테고, 우리는 평소처럼 축제를 즐기고 일상을 편안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답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경제제재로 럭셔리브랜드에서 맥도널드 햄버거 같은 대중브랜드까지 서방기업들이 대부분 철수했지만, 모스크바 시민들의 소비는 위축되지 않고 있다. 맥도널드 간판을 내리고 러시아 토종 이름의 간판을 새로 건 붉은광장 인근 햄버거점에는 새벽까지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샤넬 크리스쳔디오르 루이비통 등 럭셔리브랜드가 입점했던 최고급쇼핑몰도 이들 브랜드가 철수했지만 여전히 성업 중이다.
성바실리대성당 인근의 최고급 유기농마켓에는 값비싼 캐비어와 유기농 수박을 사기 위해 모스크바 시민들이 장사진을 치는 풍경이 며칠째 이어진다.
NYT는 “우크라이나전쟁 전황을 사실 그대로 알려주는 언론매체가 사실상 전무한 상황에서 모스크바 시민들은 푸틴정권의 애국주의 홍보만을 믿고 있다”면서 “이들에게 전쟁은 마치 남의 나라 얘기인 듯하다”고 전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