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와 의회는 물류를 책임지는 철도와 항만 분야 노사 갈등이 깊어지면 파업을 막기 위한 적극적 중재에 나서며 개입해 왔다. 물류 마비가 자칫 국가 전체 경제에 나쁜 파급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친노조 행정부를 자처해 온 조 바이든 대통령도 핵심 지지기반인 노동계 비판을 무릎 쓰고 철도노사 잠정 합의안을 강제하는 법안에 서명, 파업을 불법화하는 강력한 조치에 나섰다.
미국 철도노조 단체교섭 협상은 2020년 1월 본격 시작됐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의 무역 전쟁으로 미국의 농업과 제조업이 큰 타격을 입었고, 화물 운송 수요는 급감했다. 철도 회사 경영진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자동화와 비용 절감을 선택했다. 더 적은 수의 근로자가 더 긴 열차를 수송해 운송 효율을 높이는 이른바 ‘정밀 스케줄링 운송’(PSR) 정책이 도입됐다.
2019년 한 해에만 2만 명 가까운 철도 노동자가 해고됐다. 워싱턴포스트(WP)는 “대공황 이후 가장 많은 해고”라며 “철도 노동자의 약 10%가 1년 만에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미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2018년 11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철도 산업에서 약 4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노동통계국은 무역의 불확실성 증가, 미국의 석탄 사용 감소 등과 함께 노동자의 업무 부담을 키운 정밀 스케줄링이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했다. 노사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가세하며 협상은 공전을 되풀이했다.
그사이 노동자들의 삶은 질은 감소했다. 북미 대형 화물열차 운영사 BNSF 철도의 저스틴 샤프 차장은 지난여름 자신의 어금니 충치 치료를 위해 치과에 갈지, 아니면 아들의 7번째 생일 파티에 참석할지를 놓고 고심에 빠졌을 정도라고 AP통신에 말했다. 유급 병가가 없고, 연차를 쉽게 낼 수 없을 만큼 열악한 근로조건 때문이었다. 그는 아들 생일 파티를 선택한 대가로 치료시기를 놓쳐 수개월 뒤 어금니를 뽑아야 했다고 토로했다. 팬데믹 이후 최악의 인플레이션이 찾아왔지만 2년간 단체협약이 타결되지 않아 임금도 오르지 않았다.
미국 럿거스대 토드 베이천 교수는 “(사 측의 조치는) 주주에게 높은 수익을 주기 위해 이익을 극대화한 모델”이라며 “(노동자들의) 일과 삶 균형이 깨지는 위기를 초래했다”고 말했다.
노사는 지난 2월 국가중재위원회에 중재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양측이 합의를 이루지 못해 지난 6월 협상 중단이 선언됐고, 파업을 위한 냉각 기간에 돌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냉각 기간이 끝나기 직전인 지난 7월 15일 철도노동법에 따라 중재에 개입하기 위해 대통령 비상위원회를 구성했다.
마티 월시 노동부 장관이 직접 중재에 나서는 20시간에 걸친 마라톤협상 끝에 노사 양측은 지난 9월 15일 잠정 합의안을 극적으로 도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때 노사에 각각 전화를 걸어 파업에 따른 경제적 충격 우려를 전달했다고 한다. 파업 디데이인 16일 자정을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잠정안에는 추후 5년에 걸쳐 철도 노동자 임금 24% 인상, 1인당 1만1000달러 보너스 지급 등 내용이 담겼다. 노조가 원하는 유급 병가는 하루만 포함됐다.
그러나 잠정 합의안은 부결됐다. 미국의 12개 주요 철도 노조가 잠정 합의안 비준을 위해 투표를 진행했는데, 4개 노조가 유급 병가 일수 문제를 지적해 반대했다. 나머지 노조가 4개 노조 입장을 존중하기로 하면서 결국 전체 노조가 12월 9일 총파업을 하기로 결의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꺼내든 카드는 법적 조치였다. 헌법 제1조 8항은 미 의회에 주(州) 간의 교역을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연방대법원은 여기에 주 경계를 넘어 무역을 위협하는 철도 노동 분쟁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도 포함한다고 결정했다. 미 상·하원은 지난 9월 마련된 노사 잠정 합의안을 강제하는 법안을 연이어 통과시켰고,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일 해당 법안에 서명하며 12월 물류 대란 우려를 잠재웠다.
바이든 대통령은 법안 서명식 연설에서 “철도가 없으면 많은 미국 산업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며 “이 법안은 곤란한 철도 분쟁을 종식하고, 우리나라가 매우 안 좋은 시기에 경제적 재앙을 맞는 걸 피하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제4인터내셔널 국제위원회는 이번 법안 처리를 “모든 노동자의 민주적 권리에 대한 중대한 공격”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여론 생각은 달랐다. 여론조사업체 유거브가 철도노조 파업 문제에 대해 진행한 설문에서 미국인 57%는 의회의 노사합의 강제 법안에 대해 지지를 표명했다. 민주당 지지자의 찬성이 73%로 가장 높았고 이어 공화당 지지자(54%), 무당파 응답자(45%) 순으로 나타났다.
미국 철도협회가 포브스 테이트 파트너스에 의뢰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 92%가 파업을 피하기를 원했고, 85%는 파업 시 인플레이션 악화가 우려된다고 답했다. 응답자 72%는 정부 중재로 도출한 잠정 합의안이 양측에 공정하다고 답했다.
최악의 인플레이션에 따른 경제 위기 우려, 정부의 중재 노력에 따른 여론전이 바이든 행정부의 파업 불법화 조치에 우호적 분위기를 끌어낸 낸 셈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드문 초당적 합의를 견인해 낸 건 파업이 이제 막 완화하기 시작한 인플레이션을 다시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노사 분쟁을 개별 사업장 내에서 풀 것을 존중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적 경제에 영향을 끼치는 분쟁의 경우 대통령과 의회가 적극 개입할 권한을 헌법과 법률로 보장하고 있다.
의회가 파업을 막기 위해 노사 협상에 개입한 건 이번까지 모두 19번이다. 마지막 개입은 1994년이었다. 시카고에서 중서부 9개 주로 이어지는 5033마일 길이의 철도 라인을 담당하던 ‘수 라인’은 임금 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6주 넘게 파업을 지속하고 있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그해 8월 철도노동법에 따라 중재를 위한 비상위원회를 가동했고, 파업 중이던 노동자에게 업무 복귀 명령을 내렸다. 대통령의 업무 복귀 명령 다음 날 노동자 대부분이 직장으로 돌아왔다. 대통령 비상위원회 주재로 시작된 중재는 그해 11월까지 지속했고, 타결안을 도출하면서 파업은 재발하지 않았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