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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란민 의식주부터 일자리까지… 정부·교회 함께 원스톱 지원


체육관에서 가장 눈에 띈 곳은 132㎡(약 40평) 크기의 공간에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놀이방이었다. 차가운 바리케이드가 사방을 둘러싼 공간이었지만 형형색색의 장난감 덕분인지 따뜻한 분위기가 느껴졌고, 그 안에선 한 소녀가 블록 놀이에 푹 빠져 있었다. 시선을 붙든 것은 놀이방 벽면이었다. 벽에는 이곳에 잠시 머물다 떠난 아이들이 전쟁을 피해 떠나온 고향, 헤어진 친구나 가족을 생각하면서 그린 그림이 빽빽하게 붙어 있었다.

지난 5일(현지시간) 찾은 이 체육관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있는 ‘BOK 스타디움’이었다. BOK 스타디움은 1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체육관으로, 헝가리 정부는 지난달 21일 이곳을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위한 ‘원스톱 지원 센터’로 만들었다. 우크라이나에서 기차를 타고 헝가리에 도착한 피란민들은 기차역에서 ‘웰컴 투 헝가리’라는 제목이 붙은 유인물을 통해 이 체육관으로 가는 교통편과 이곳에서 제공하는 각종 서비스를 확인하게 된다. 관계자에 따르면 BOK 스타디움을 찾는 피란민은 매일 400~700명에 달한다. 체육관에는 피란민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과 일자리를 알선하는 직업소개소, 심지어 반려동물을 진료해주는 곳까지 운영 중이었다.

BOK 스타디움을 찾은 이유는 헝가리개혁교회(RCH)가 이곳에서 벌이는 피란민 사역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취재 현장엔 한국교회를 대표해 우크라이나 구호 사역을 전개하는 한국교회봉사단(한교봉) 관계자들도 함께했다.

RCH에 따르면 헝가리 정부는 BOK 스타디움에서 피란민에게 양질의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6개 단체와 협력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RCH였다. 5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RCH는 1000여개 교회, 180만 성도가 소속된 곳으로 명실상부한 동유럽 개신교의 대표 교단이라고 할 수 있다. 오도르 벌라지 RCH 해외선교부 총무는 “최선을 다해 피란민을 돕고 있다”며 “우리의 사역을 통해 헝가리와 우크라이나의 관계가 돈독해졌으면 한다. 하나님이 만드는 승리의 역사가 두 나라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RCH가 BOK 스타디움에서 벌이는 일은 이 교단이 전개하는 피란민 사역의 극히 일부일 뿐이었다. RCH는 지난 2월 24일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사역자들을 국경으로 보내 피란민을 섬기기 시작했다. 그동안 우크라이나에 보낸 식량은 1t 트럭 240대 분량에 달한다. 우크라이나에는 RCH 소속 교회가 100여곳이나 되는데, 교단에서는 전쟁이 발발한 뒤 이들 교회 목회자의 생활비도 지원하고 있다. 지금까지 RCH의 사역을 통해 혜택을 입은 우크라이나인은 20만명이 넘는다. 피란민 어린이가 계속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돕고 피란민 청년에게 일자리를 소개해주는 것도 RCH의 사역 중 일부다. 마르톤 유하스 RCH 봉사단장은 “가장 필요한 인력은 의료진”이라며 “RCH는 현재 의사 약 30명을 접경 지역 등지에 투입하고 있는데, 이 정도 규모로는 부족함을 느낄 때가 많다”고 전했다.

피란민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하는 일도 전개하고 있다. 이날 방문한 RCH의 한 선교센터는 전쟁 시작 후 ‘피란민 쉼터’로 바뀐 곳이었다. 여기서 만난 에리카 호르바트씨는 지난 2월 25일 딸과 세 살배기 손자를 데리고 국경을 넘은 피란민이었다. 그는 “남편이 올해 53세인데 전쟁 전부터 부다페스트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징집 통보를 받아 너무 걱정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거듭 말했다.


한교봉은 전쟁으로 고통 받는 우크라이나 국민을 돕기 위해 헝가리개혁교회봉사단(HRCA)과 업무협약(MOU)을 6일 체결했다. 양 기관은 전쟁 희생자와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섬기는 데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한교봉 대표단장 김태영 목사는 “피란민을 섬기는 헝가리교회의 사역에 동참할 수 있게 돼 감사하다”며 “두 나라 교회가 협력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협약식에는 HRCA와 RCH 임원 1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 중 일부는 전날까지 피란민을 돕기 위해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서 활동한 사역자였다. RCH에 따르면 헝가리로 넘어온 피란민은 50만명이 넘는다.


부다페스트(헝가리)=글·사진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