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장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예산 문제를 해결할 의장을 구해야 한다. 지금 싸우지 않으면 우리는 나라를 잃을 수도 있다.”
공화당 내 강경 보수파 모임 ‘프리덤 코커스’ 소속 랠프 노먼 공화당 하원의원은 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케빈 매카시 원내대표 의장 선출 지지 요청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자신의 소셜 미디어 트루스소셜에 “공화당은 위대한 승리를 부끄러운 패배로 바꿔서는 안 된다. 매카시는 업무를 잘 해낼 것”이라며 반대파 설득에 나섰다.
그러나 노먼 의원 등 강경 보수파 20명은 이날도 한 명의 이탈 없이 똘똘 뭉쳐 의장 선출을 저지했다. 오히려 매카시 원내대표 지지 의원은 201명으로 줄었다. 맷 개츠 하원의원은 “투표할 때마다 득표가 줄어드는 절망적인 사람”이라고 조롱했다. 소수의 극우 정치인들이 캐스팅보트를 무기로 의회 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카오스 코커스가 돌아왔다”고 평가했다. 매카시 반대파 20명 중 19명이 프리덤 코커스 소속이다. 프리덤 코커스는 짐 조던 의원 등 강경 보수세력이 주축이 돼 2015년 만들어졌다. 당시 이들은 정강을 통해 “양 정당 지도자들에 너무 많은 권한이 집중돼 대부분 의원은 입법 과정에서 찬성·반대 외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며 “워싱턴을 망가뜨린 시스템을 유지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과의 입법 거래로 강경 보수 유권자들의 뜻이 의회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불만이다. 이들은 “유권자들은 공화당원 지지를 얻을 수 없는 민주당원과 거래하라고 우리를 뽑은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프리덤 코커스는 타협 없는 강경 투쟁 방식으로 자신들의 선명성을 드러내 왔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이민 개혁안 등에 반대하며 연방정부 업무정지(셧다운) 카드를 꺼내 들었고, 프리덤 코커스 창립 멤버인 마크 메도우스 전 의원은 2015년 7월 공화당 소속 존 베이너 당시 하원의장 해임 결의안을 제출하며 그의 사퇴를 끌어내기도 했다. 프리덤 코커스는 베이너 전 의장이 오바마 행정부와 싸우지 않고 협조하고 있다고 줄곧 비판했었다. 베이너 전 의장 사퇴로 매카시 원내대표가 후임 의장 물망에 올랐지만, 프리덤 코커스는 그 역시 민주당에 협조적이라는 이유로 공개 반대했다. 매카시 원내대표는 당시 이유를 밝히지 않고 “나는 적임자가 아니다”며 출마를 포기했는데, 프리덤 코커스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프리덤 코커스는 당 지도부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것과 하원 위원회 독립성 회복, 운영위 구성 다양화 등을 주장했다. 당 지도부에 집중된 권력을 소수파에도 나누라는 것이다. 이들은 이번에도 매카시 원내대표에게 같은 요구 사항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예산안 마련 때 적자 지출 금지, 연방 공무원 해고 요건 완화, 국경 강화, 국세청 해체 등도 주장하고 있다.
NYT는 “매카시 원내대표에 대한 반대파 반란은 개인적 반감뿐만 아니라 의회와 정부 개편을 위해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목적”이라며 “이는 분열된 의회가 기본법안 제정을 훨씬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대파 20명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관계는 대체로 돈독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해 중간선거 과정에서 이 중 17명(85%)을 공개 지지했다. 재선 이상 의원 15명 중 14명은 2021년 1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사기 주장을 따르며 선거인단 결과를 뒤집기로 투표했다. 노먼 의원은 2021년 1월 6일 의회 폭동 이후 당시 백악관 비서실장이던 메도우스 전 의원에게 대통령이 계엄령을 발동해야 한다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프리덤 코커스를 이끄는 앤디 빅스 의원은 “우리는 트럼프를 사랑하지만, 매카시는 적임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