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선박 ‘회령호’가 지난달 말 중국 상하이 남쪽 해안을 떠나 북한 해역으로 돌아간 정황이 포착됐다. 유엔 제재 리스트에 올라 있는 이 선박은 최근 몇 년 동안 중국 남부 해역을 오가며 북한산 석탄을 하역하는 등 물자를 수송한 것으로 보인다.
11일(현지시간) 미국 외교전문매체 디플로맷에 따르면 유엔 전문가 패널은 최근 공개한 보고서에서 북한 선박이 중국 최대 항만 중 한 곳인 저장성 닝보 저우산항을 드나드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저우산항은 북한 선박이 제재를 회피해 석탄과 석유 등을 선박간 수송 형식으로 주고받는 장소로 꼽힌다. 디플로맷은 회령호가 2020년 초 이후 북한의 엄격한 코로나19 통제 조치에도 불구하고 저우산 인근 해상에 5번 멈춰 섰다고 전했다.
지난해 회령호가 저우산항 인근에 도착했을 때 수면 아래로 낮게 가라앉아 있던 선박이 나중에는 높아졌다고 한다. 유엔 전문가 패널 보고서는 “당시 회령호가 북한산 선탄을 하역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전문가 패널은 지난해 10월 공개한 보고서를 통해 그해 2~5월 저우산 주변에서 이뤄진 북한의 불법 석탄 수출 규모가 36만4000t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다만 회령호는 중국 항구에는 입항하지 않고 400여개 섬으로 이뤄진 저우산 군도 인근 해상에 정박한 채 선박간 물자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제재를 회피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엔이 자산 동결한 선박이 항구에 입항하면 유엔 회원국은 이를 압류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근해에 접근하되 입항은 하지 않음으로써 중국이 단속에 나서지 않아도 될 명분을 만들어준 셈이다. 중국은 회령호의 항행 관련 질의에 “기항 통지 기록은 없다”고 밝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 2397호는 제재를 위반한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 선박 입항시 나포, 검색, 억류를 의무화했다. 그런데 항구가 아닌 영해에서는 ‘억류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한다’고 규정해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이 때문에 중국 등 북한에 우호적인 국가들이 북한의 제재 회피를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디플로맷은 대부분의 북한 선박이 중국 해역에서 자취를 감추려 하지만 회령호는 몇몇 큰 섬들을 경유해 운행 정보가 쉽게 드러났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북한이 중국 해역을 오가며 교역한다는 사실을 숨기려는 노력도 거의 하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