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WB)이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을 둔화 수준인 1%대로 크게 낮췄다. 미국, 유럽, 중국 등 세계 주요 경제의 둔화로 세계 경제가 침체에 매우 근접할 위험에 직면했다는 경고다. 세계은행은 인플레이션과 이에 따른 금리 인상과 투자 감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코로나19 재확산 및 부동산 위기를 위험 요인으로 꼽았다.
세계은행은 10일(현지시간) 발표한 세계 경제전망에서 올해 글로벌 경제 성장률을 1.7%로 지난해 6월 전망치(3.0%)보다 1.3% 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됐던 2009년, 2020년을 제외하고 지난 30년간 가장 낮은 수치다. 세계은행은 내년 성장률은 2.7%로 전망했다.
세계은행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냉각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역사상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주요국이 긴축을 동시에 진행해 금융 환경이 악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과 중국의 코로나19 재확산과 부동산 부채 위기 등이 성장률 전망 하향에 영향을 미쳤다고 언급했다.
세계은행은 미국과 유로존, 중국 모두 경제가 취약한 상태이며, 이들 경제의 파급 효과가 신흥 경제와 개도국이 직면한 어려움을 더 가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자산 가격이 동시에 하락하고, 투자가 크게 위축됐으며, 다수 국가에서 주택시장이 매우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은행은 올해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0.5% 기존 전망보다 1.9% 포인트 낮췄다. 1970년 이후 공식 침체 기간을 제외하면 가장 낮다. AP통신은 “미국이 경기침체는 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세계 경제의 약세는 미국 기업과 소비자에 또 다른 역풍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은행은 유로존에 대해서는 올해 성장 정체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GDP는 전년 대비 4.3%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성장률(2.7%)보다는 높지만, 지난해 6월 예측보다는 0.9% 포인트 낮다. 중국을 제외한 신흥 경제와 개도국의 성장률은 지난해 3.8%에서 올해 2.7%로 둔화할 것으로 봤다.
세계은행은 선진국 경제의 95%, 신흥 경제와 개발도상국의 거의 70% 대해 성장률 전망을 기존 보다 낮췄다. 세계은행은 2022∼2024년 신흥 경제와 개도국에 대한 총투자가 평균 3.5%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지난 20년간 투자 증가율의 절반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세계은행 미국, 유럽 등 선진국 경제의 금리 상승이 빈곤국의 투자 자본을 끌어들여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데이비드 맬패스 세계은행 총재는 “신흥 경제와 개도국은 막대한 채무 부담과 투자 위축 때문에 수년간 저성장에 직면했다”며 “선진국은 매우 높은 수준의 국가부채와 금리 인상을 마주한 상태에서 세계 자본을 빨아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은행은 지역별로 동아시아·태평양 성장률을 종전 5.2%에서 4.3%로 낮췄다. 유럽·중앙아시아(1.5%→0.1%),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1.9%→1.3%), 중동·북아프리카(3.6%→3.5%). 남아시아( 5.8%→5.5%),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3.8%→3.6%) 등 나머지 지역도 모두 하향 조정했다. 이번 보고서에서 한국에 대한 전망은 언급되지 않았다.
세계은행은 지난 20년을 돌아보면 이 정도 수준의 성장 둔화는 세계 경기침체로 이어졌다고 경고했다. 또 극빈층의 약 60%가 사는 사하라 사막 이남의 1인당 소득 증가율은 평균 1.2%에 그쳐 빈곤율이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세계은행은 “취약한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예상보다 높은 인플레이션, 물가를 잡기 위한 급격한 금리 인상, 코로나19 팬데믹 재확산이나 지정학적 긴장 고조 등 그 어떤 새로운 악조건이 세계 경제를 침체로 밀어 넣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