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격 방문은 미국의 흔들림 없는 지원 의지를 보여줘 길어지는 전쟁의 피로감을 극복하고 동맹의 단일 대오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특히 21일 블라미디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국정 연설에 앞서 전 세계를 주목시킨 깜짝 이벤트를 연출해 러시아에 지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키이우 마린스키궁에서 약 30분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담한 뒤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전쟁 발발) 1년이 지났지만 키이우가 건재하고, 우크라이나도 건재하다. 민주주의도 건재하다”고 말했다. 또 “미국과 세계는 계속 우크라이나 곁에 서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방문 목적이 “미국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데에 있다”며 “우리는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상징하는 파란색과 노란색 줄무늬 넥타이를 착용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키이우가 내 마음의 한 부분을 사로잡았다”며 “(추가 지원에) 포탄과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 곡사포 등 더 많은 군사 장비가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존 제재를) 회피하려거나 러시아 군수물자를 보충하려는 엘리트층과 기업에 대한 추가 제재를 발표할 것”이라며 이번 주 이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번 대화는 우리를 승리에 더 가깝게 만든다”며 “장거리 무기, 그리고 이전에는 우크라이나에 제공되지 않았지만 공급될 수 있는 무기들에 대해서도 논의가 있었다”고 전했다.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우크라이나가 원하는 F-16 전투기 지원 논의가 있었냐는 질문에 “좋은 토론이 있었다”고만 답했다.
미 고위당국자는 브리핑에서 “미국 대통령이 주둔 미군이 없는 전쟁 지역을 방문하는 것은 역사적이고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은 아무리 어려워도 방문을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위험을 감수하길 원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방명록에 젤렌스키 대통령의 용기와 리더십에 경의를 표한다고 적었다. 두 정상은 키이우 시내를 함께 걷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은 안전 문제를 고려해 사전예고 없이 극비리에 진행됐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이 키이우에 머무는 동안 벨라루스에서 러시아산 미그-31기 전투기가 이륙한 것이 감지돼 공습 경보가 울리는 등 긴박한 장면이 연출됐다.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의 도착 직전 러시아에 방문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바이든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은 지난 17일 최종 결정됐다. 그러나 백악관은 20일 바이든 대통령이 워싱턴DC에 머무르는 것처럼 공식 일정을 발표했고, 21일 오전 폴란드 바르샤바에 도착한다는 사실만 공개했다. 기밀 유지를 서약한 소수의 백악관 출입기자들만 동행했다.
이번 방문은 오는 21일 예정된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특별 군사작전’ 관련 국정연설을 겨냥한 목적도 있다. 푸틴 대통령은 연설에서 전쟁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강경 입장을 언급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 고위당국자는 바이든 대통령이 21일 폴란드에서 서방의 분열을 예상한 푸틴이 틀렸다는 점을 다시 강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이날 러시아에 도착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키이우로 향하면서 발표한 성명에서 “우크라이나의 민주주의와 주권, 그리고 영토의 온전성에 대한 변함없고 지칠 줄 모르는 약속을 재확인한다”며 “지난 1년간 미국은 대서양부터 태평양에 걸친 여러 나라와 전례 없는 군사적·경제적·인도적 지원을 위한 연합전선을 구축했고 이 지원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