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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외 약한 공격·뜻밖의 강한 저항… 모든 예측은 빗나갔다


지난해 2월 24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일방적인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수많은 군사·외교 전문가를 당황하게 했다. 압도적인 군 전력을 갖춘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영토가 급속도로 점령될 것이라는 예측이 다 빗나갔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의 결정적 장면을 되짚어 본다.


2월 24일 새벽 흑해 우크라이나령 뱀섬(즈미니섬) 수비대는 침공에 나선 러시아 대형 군함으로부터 ‘항복하라’는 무선을 받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해병은 ‘꺼져라’라고 응수했다. 뱀섬 수비대원 78명은 군함 수척과 전투기 수십대를 앞세운 러시아군 앞에 속수무책이었지만 항복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우크라이나의 항전은 전 세계 언론에 집중 조명됐다.


침공 첫날부터 기갑전력을 앞세워 키이우로 진격하던 러시아군은 키이우에서 30여㎞ 떨어진 2만5000여명의 소도시 ‘부차’에서 멈췄다. 강력한 저항에 더 전진할 수 없던 러시아군은 이곳에서 만행을 저질렀다. 한 달여가 지난 4월 1일 부차를 탈환한 우크라이나는 부차에서 410구 이상의 민간인 시신을 수습했다고 밝혔다. 국제사회는 공분했다. 미국과 서방은 이를 ‘제노사이드(집단학살)’로 규정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전쟁범죄 재판을 요구했다.


도네츠크주 해안도시 마리우폴의 아조우스탈은 동유럽 최대 제철소로 우크라이나 해병대와 민병대인 아조우연대로 구성된 수비대 150여명이 러시아군 수천명에 맞서 두 달 이상 버틴 곳이다. 아조우스탈 수비대는 전원 포로로 붙잡힐 때까지 저항했다. 가장 잔인하다고 알려졌던 체첸사단, 러시아 용병 바그너그룹의 합동 공격도 이들의 저항 앞에 쩔쩔맬 수밖에 없었다. 추위에 떨면서도 제철소 은신처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우크라이나 국가를 부르던 수비대원들의 결연한 얼굴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하르키우는 우크라이나 군수산업 중심지이자 과학연구단지가 즐비한 제2의 도시로 러시아군이 전쟁 초기부터 총공세를 펴 한 달여 만에 장악했다. 그러나 도시에 남아 있던 자발적 민병대의 게릴라전이 이어지는 동안 우크라이나군은 차근차근 전세를 뒤집어나갔다. 러시아 국경에서 하르키우로 가는 주요 길목인 교통요지 이지움을 수복한 뒤 5월 4일 하르키우 전체를 탈환했다. 이때부터 우크라이나군은 수세에서 공세로 태세를 대전환했다. 러시아는 하르키우를 내준 뒤부터 계속 동쪽으로 밀려갔다.



미국은 우크라이나군의 하르키우 탈환을 기점으로 M142 고속기동포병시스템(HIMARS·하이마스) 수백대를 공급했다. 록히드마틴이 개발한 다연장로켓포인 하이마스는 러시아군의 다연장로켓포보다 훨씬 더 긴 사거리와 정밀유도 포격이 가능한 첨단무기다. 병력과 무기 수에서 밀렸던 우크라이나군에 하이마스는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았다. 하이마스는 우크라이나 점령지역 내 러시아군의 핵심 병참시설, 무기고, 심지어 러시아 내 군수지원시설까지 정밀 타격했다. 우크라이나군은 하르키우주 전체를 수복하고 남쪽 자포리자주도 차근차근 탈환할 수 있었다.


9월 21일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전역에 동원령을 발동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었다. 모병제를 채택한 러시아는 평상시 급여를 받는 직업군인으로 군을 구성했다. 전황이 급격하게 불리해지자 징집을 실시한 것이다. 동원령이 발표되자 러시아 곳곳에서는 반대 시위는 물론 징집을 피하기 위한 해외 탈출 행렬이 이어졌다. 러시아군은 동원령에 따라 엄청난 병력이 증강됐음에도 쉽게 전황을 바꾸지 못했다. 형편없는 훈련과 보급으로 징집병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는 상태다.


11월 11일 우크라이나군 선발대가 러시아에 빼앗긴 지 8개월 만에 남부 최대도시 헤르손 시내에 진입했다. 시내에 주둔했던 러시아군 3만여명은 드니프로강 동쪽과 남쪽으로 철수했다. 헤르손은 2014년부터 러시아에 합병된 크림반도 바로 위쪽에 위치한 전략 요충지다. 점령 8개월간 러시아는 헤르손을 통해 크림반도의 군수물자를 동부전선으로 전달할 수 있었지만 이곳을 잃으면서 전략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헤르손 수복 소식을 듣자마자 라디오 연설을 통해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라고 흥분했다.


12월 22일 젤렌스키 대통령은 워싱턴DC 미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을 마치며 “해피 빅토리어스 뉴 이어(Happy Victorious New Year)”라고 말했다. 신년 인사를 “반드시 승리하는 새해가 되겠다”고 한 것이다. 비밀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극도의 보안 속에 미국을 방문한 그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대규모 무기 지원을 약속받았다. 또 “여러분의 돈은 절대 자선금이 아니다. 전 세계 민주주의와 안보를 가장 책임 있는 방법으로 지키는 투자”라고 말해 미 의원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