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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죽을 때까지 함께 했다…우크라 부부 병사 이야기

서른 한살 동갑내기 타라스 멜스터와 올라 멜스터는 지난해 6월 우크라이나 중부 키로보흐라드시에서 같은 시간, 같은 참호에서 전사한 우크라이나 자원병 부부였다.

수도 키이우에서 작은 정보통신(IT) 기업을 공동 운영하던 타라스와 올라는 2022년 2월 24일 새벽 포탄 소리와 함께 러시아군이 침공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부부는 소식을 듣자마자 키이우 군당국을 찾아가 자원병 입대 신청서를 냈다. 이미 결혼한데다 징집 대상도 아니었지만, 조국의 위기를 수수방관할 수 없었다. 그날 두 사람은 손가락을 걸고 “내 나라를 구하자. 죽을 때까지 같이 있자”고 맹세했다.
두 사람은 처음에 키이우시의 자원병 수비대에 배치받았다. 컴퓨터공학 전공자인 타라스는 수비대 통신망 운영팀에서, 올라는 간호병으로 일했다.

전황은 해가 뜰 때마다 급박해졌다. 두 사람이 속한 수비대는 동부 돈바스지역을 재배치됐다. 다소 평화롭던 그들의 군대생활은 매일 러시아군의 공격을 견디고, 역공을 가해야 하는 최전선의 삶으로 바뀌었다.

같은 해 6월 18일 오전 두 사람이 속한 수비대는 러시아 최정예 체첸군과 바그너그룹 선봉대를 막고 있었다. 타라스는 최전방 참호속에 있었고, 올라는 수비대 지휘부 사무요원이었다. 러시아군의 맹공이 퍼부어지자, 올라는 수비대장에게 남편이 있는 최전선 참호로 가겠다고 보고한 뒤 기관총을 들었다.


수비대장이 만류했지만, 소용없었다. “남편과 떨어져서 남편 걱정이나 하며 여기 앉아있고 싶지 않아요.”

올라는 이 말을 하자마자 힘껏 전방 참호로 달려갔고, 남편 바로 옆에 도착해 함께 웅크리고 앉았다. 참호 동료가 “여성은 위험하다”고 하자, 두 사람은 “진짜 위험한 건 우리 둘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답했다.

갑자기 엄청난 포격이 가해졌고, 참호는 아수라장이 됐다. 10여명 가운데 살아남은 자는 절반도 되지 않았다. 타라스와 올가는 서로 손을 굳게 잡은 채 숨져 있었다.

타라스와 올가가 서로 사랑에 빠진 건 8살 조무래기 시절이었다. 키로보흐라드 유태인 공동체에서 태어난 두 사람은 처음 만난 날 사랑에 빠졌다. 함께 온 동네를 뛰어다니고 함께 학교를 다니고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의 홀로코스트 역사를 공부했다. 키이우 대학에도 같이 진학했고, 졸업후 25살이 되던 2016년 결혼했다.

타라스의 전공과 올가의 전공(미술)을 살려 웹사이트 디자인과 네트워킹을 전문으로 하는 IT회사를 공동 설립했고, 서로 사랑하며 아기를 갖기 위해 노력하던 평범한 부부였다.

두 사람의 운명은 러시아의 침공으로 180도 바뀌었다. 군사훈련 경험이 전혀 없던 두 사람, 소집 의무조차 없던 그들이었지만, 백척간두의 조국을 그냥 두고 폴란드 같은 외국으로 도피할 순 없었던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20일(현지시간) ‘그들은 결혼했고, 같이 싸웠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함께 죽었다’는 제목으로 타라스와 올가의 스토리를 게재했다.

부부는 참전 첫날부터 자신들만의 웹사이트와 SNS에 전쟁일기를 썼다. “여기 있는 모든 게 다 좋다. 전선은 아무 이상이 없다.” 죽기전 그들이 남긴 마지막 일기의 마지막 문장이다.

소설가인 올렉산드르 미크레드는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영화 편집자, 소설가, IT기술자, 화가 등 수많은 전문 직업인들이 지금 자원입대해 조국을 지킨다”면서 “내 친구였던 올가와 타라스도 그들 중의 한 쌍”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전쟁에 투입된 우크라이나 병력의 40~50% 가량이 전쟁 전 단 한번도 군사훈련을 받은 적이 없는 자원병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아마추어’인 우크라이나군이 대다수가 직업군인인 러시아군을 수세로 몰아넣은 것 자체가 기적인 셈이다.

NYT는 부부와 같은 부대에 근무했던 장교의 말을 인용해 “우크라이나가 그들을 물리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가슴 속의 의지(will of heart)’”라면서 “우크라이나판 ‘사랑할 때와 죽을 때(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소설)’와도 같은 타라스와 올가의 스토리는 지금 우크라이나에선 별로 놀랍지 않은 이야기”라고 전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