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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기미 없는 지진의 고통…희망 전하는 국제사랑의봉사단


지난 20일(현지시간) 오후 튀르키예 하타이주의 한 텐트촌에서 지내는 이재민들의 눈길이 이곳으로 진입하는 하얀 미니밴 한 대에 집중됐다. 문틈으로 국제사랑의봉사단의 빨간 조끼가 비치자 수십명의 이재민들이 차를 향해 몰려들었다. 순식간에 차량 앞은 손을 들고 “아비, 아비(튀르키예어로 형·오빠)”를 외치는 이재민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헌병대원들이 도착한 뒤에야 간신히 정상적으로 배급이 진행됐을 정도였다.

이곳 캠프에는 시리아 난민과 튀르키예 국민이 뒤섞여 약 300명 규모의 텐트촌을 형성하고 있다. 이날 봉사단은 샴푸, 치약, 칫솔 등이 담긴 개인 위생 키트 100개와 가벼운 패딩 점퍼 수십장 그리고 간식거리 100명 분을 준비했다. 하지만 구호 물품이 동나는 데는 20여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보름째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텐트에서 지내온 이재민들은 구호 물품이 동난 뒤에도 한참을 아쉬운 기색으로 차량 앞을 서성였다.

이번 강진 피해 복구를 위해 현지에 긴급구호팀을 파견한 국제사랑의봉사단은 지난 14일부터 가지안테프를 본거지로 튀르키예 전역에서 구호 활동을 펴고 있다. 선발대 4명이 가장 먼저 도착해 현장 사전 조사와 긴급 물자 조달에 나섰고, 18일부터는 2차 긴급구호팀 4명이 합류해 카흐라만마라슈·아디야만·하타이 등 피해가 집중된 지역에서 본격적인 구호 활동을 벌였다. 22일에는 3차 긴급구호팀 5명도 현지에 도착해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김형석 국제사랑의봉사단 요르단지부장은 봉사단의 역할을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고통받는 이들을 돕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리아 난민이나 쿠르드족처럼 이번 구호 과정에서 소외된 약자들을 찾아서 이들이 어려운 시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17일 봉사단이 찾은 아디야만의 한 공원에는 시리아 난민과 쿠르드인 수십명이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식사만 지급받은 채 방치돼 있었다. 봉사단은 이들을 위해 미니밴에 실어 둔 위생 키트와 생필품, 간식거리를 탈탈 털었다. 고마움을 느낀 쿠르드족 남매 두 명이 온종일 봉사단의 구호 현장을 따라다니며 힘을 보태기도 했다.

봉사단의 손길은 정부와 민간 단체 모두에게서 소외된 교외의 작은 마을로도 향했다. 18일 찾은 가지안테프주 테르켄이 바로 그런 마을이었다. 700여명의 이곳 주민은 여전히 텐트와 임시 거처에서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피해 집중 지역과 거리가 멀고 피해 가구 수도 적다 보니 정부나 단체의 지원은 사실상 없다시피한 상태였다.


봉사단은 이곳에서도 다양한 간식과 위생용품, 옷가지 등을 주민들에게 전달했다. 지진으로 자식 둘을 잃고 임시 거처에서 지내던 베키르(33)는 “지난 며칠 사이 우리를 도우러 와준 건 여러분밖에 없다”며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물품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사람 사이의 ‘정’을 전할 때도 있었다. 지난 21일 카흐라만마라슈의 텐트촌에서 만난 파티마(65)는 봉사단의 모습을 보자마자 눈물을 글썽이며 팀원들을 자신의 텐트 안으로 잡아 끌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고통을 나누고 위로해줄 이였다. 지진으로부터 2주가 지났지만 파티마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었다. 그의 딸과 사위, 손자들은 지진으로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며칠 전 발견된 딸은 이미 숨진 상태였고, 건물 잔해 어딘가에는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가족이 여럿이다. 팀원들은 “가뜩이나 가난하고 힘들게 살았는데 이젠 어떡하느냐”며 통곡하던 파티마를 끌어안고 각자의 위로를 담아 기도를 올렸다.

2차 긴급구호팀 일원으로 현장에 합류한 최미혜(25)씨는 “오기 전 막연히 머릿속으로 떠올렸던 지진과 실제 눈으로 본 현장은 전혀 달랐다”며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사람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지난 6일 발생한 지진으로 튀르키예와 시리아 일대에서는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4만8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집계됐다. 튀르키예 정부는 대부분의 피해 지역에서 구조 작업을 종료하고 본격적인 재건 단계 돌입을 선포했지만, 지난 20일에도 진도 6.3의 여진이 발생해 8명이 숨지는 등 고통은 여전히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어용희 국제사랑의봉사단 대표는 “아직도 튀르키예에서는 슬픔과 두려움,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며 “우리의 사랑으로 이 땅의 모든 죽음과 공포를 극복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가지안테프(튀르키예)=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