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랑(늑대전사) 외교’의 원조로 불리는 친강 중국 외교부장이 시진핑 집권 3기 대외 정책 기조를 설명하는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잘못된 길을 따라 폭주하면 재앙적인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친 부장은 미·중 관계, 대만 통일, 러시아에 대한 무기 지원설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입장을 거침없이 밝혔다.
친 부장은 7일 베이징 미디어센터에서 열린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잘못된 길을 따라 폭주하면 아무리 많은 가드레일(안전장치)이 있어도 탈선과 전복을 막을 수 없고 필연적으로 충돌하게 될 것”이라며 “그 재앙적인 결과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고 말했다. 가드레일은 미 정부가 미·중 관계 관리 필요성을 언급할 때 쓰는 표현이다.
친 부장은 또 미국을 올림픽에서 반칙을 일삼는 선수에 비유하며 “육상 경기에서 상대 선수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심지어 상대 선수를 패럴림픽에 출전하게 만든다면 이는 공평한 경쟁이 아닌 악의적 대항”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말하는 경쟁은 전방위적 억제와 탄압이며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제로섬 게임”이라고 비난했다.
친 부장은 미국이 중국의 대러시아 무기 지원 가능성을 계속 거론하는 데 대해서도 “중국은 위기를 만든 나라도 당사국도 아니며 충돌한 국가 어느 쪽에도 무기를 제공하지 않았다”며 “무슨 근거로 중국에 책임을 전가하고 제재와 협박까지 하느냐”고 반박했다.
친 부장은 대만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예상했다는 듯 중국 헌법을 들어 보이며 ‘대만은 중국 영토의 일부이고 조국 통일의 대업을 완수하는 것은 대만 동포를 포함한 전 중국 인민의 신성한 책무’라고 된 서문을 읽었다. 이어 “누구도 국가 주권과 영토 완전성을 수호하려는 중국 정부와 인민의 결심, 의지,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랑 외교에 관한 질문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여유를 보이면서도 “이 함정(전랑외교라는 프레임)을 만든 사람은 중국의 외교를 모르거나 사실을 무시하거나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이라고 또다시 미국을 겨냥했다. 이어 “중국 외교는 관대하고 호의적이지만 승냥이가 길을 막고 흉악한 늑대가 오면 중국 외교관은 반드시 늑대와 함께 춤을 추며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친 부장은 2005~2010년, 2011~2014년 외교부 대변인을 맡아 외교 사안마다 중국의 입장을 강경하게 표명해 이름을 알렸다. 주미 중국대사를 지내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공산당 총서기 3연임을 확정한 직후인 지난해 12월 외교부장에 발탁됐다. 오는 13일 폐막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국무위원으로 초고속 승진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실제로 그렇게 되면 전임 외교부장이었던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이 외교부장 임명 후 11년 걸린 길을 친 부장은 3개월 만에 오르는 셈이다. 시 주석의 신망이 그만큼 두텁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친 부장은 2시간 가까이 진행된 기자회견 내내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회견 시작 전에는 미디어센터에 모인 300여명의 기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했고 끝날 때엔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을 언급하며 여성 참석자들에게 덕담을 건넸다. 친 부장은 총 14개 질문에 답했다. 대외 문제 중에선 가장 먼저 중·러 관계를 언급했다. 중국 매체 뿐 아니라 일부 외신은 중국식 현대화, 시 주석의 역점 과제인 일대일로 등 중국 정부가 좋아할 만한 질문을 던졌다. 한·중 관계와 북핵 문제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