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이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드론 충돌 사건에 대해 통화했다. 미국은 러시아의 공격적 행동을 비난했고, 러시아는 미국이 비행제한 구역을 침범했다고 맞섰다. 양국은 사건의 책임을 상대에 떠넘기면서도 소통 채널 유지 필요성에 공감했다.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추가적 충돌을 막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오스틴 장관은 15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쇼이구 장관과 방금 통화했다”며 “열강은 투명성과 소통에 있어 귀감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오스틴 장관은 대화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대신 “미국은 국제법이 허락하는 한 어디에서나 비행과 작전을 수행할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스틴 장관은 “이 위험한 사건은 국제 공역에서 러시아 조종사들에 의한 위험하고 안전하지 않은 행동 패턴의 일부”라며 “러시아는 전투기를 안전하게 운항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오스틴 장관은 특히 “현재 우리는 어떤 잠재적 긴장 고조 가능성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소통선을 열어놓는 것이 중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즉시 전화 통화를 통해 서로에게 관여하는 것은 매우 핵심적이며, 이것이 앞으로 오판을 막는 것을 돕는다”고 강조했다.
이번 통화는 오스틴 장관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러 간 첫 물리적 충돌이라는 점에서 양국 긴장을 관리할 필요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행동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도 사건이 추가적 충돌로 비화하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오스틴 장관은 이날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50여 개국 국방 당국자 간 임시 협의체 ‘우크라이나 방위연락그룹’(UDCG) 회의에서 러시아를 향해 “실수하지 마라”고 강도 높게 경고했다.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우리는 러시아 전투기가 의도적으로 끼어들어 공격적 행동을 한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이번 충돌 자체가 고의적인지는 아직 모르겠다”고 말했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도 MSNBC 인터뷰에서 “현재 최상의 평가는 그것이 고의가 아니었을 가능성”이라며 러시아 군 당국이 의도한 행동은 아닐 것이라는 뜻을 시사했다.
러시아는 미국 책임론을 주장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성명을 통해 “쇼이구 장관은 오스틴 장관에게 ‘이 사건은 러시아 연방이 선언한 비행 제한 구역을 준수하지 않은 미국의 조치로 인해 발생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도 “양국 관계가 아마도 최저점, 매우 나쁜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각국은 대화를 통해 국익을 수호할 것”이라며 “러시아는 결코 건설적 대화를 피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책임론을 주장하면서도 연락 채널 필요성에 공감하며 추가적 충돌을 피하자는 신호를 보인 셈이다.
미·러 모두 흑해로 추락한 드론 잔해 회수에 나서기로 해 또 다른 갈등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밀리 의장은 ”이것은 미국 자산이다. 미국은 흑해에 어떤 함정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우방을 통해 회수 작전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드론은 아마도 부서졌을 것이고 회수할 것이 많지는 않을 것”이라며 “민감한 정보의 경우 삭제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무엇이 남아있든 가치있는 것은 없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우리가 그것을 회수할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다. 그것은 흑해의 아주 깊은 물 속으로 떨어졌다”며 “여전히 회수 시도가 시행될 수 있을지를 평가하고 있지만, 없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CNN은 미군이 드론을 추락시키기 전 러시아의 기밀 정보 수집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원격으로 민감한 소프트웨어를 삭제했다고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반면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는 “이번 사건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이 직접 관여했다는 점이 또다시 확인됐다”며 “우리가 잔해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수거를 시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