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투자은행(IB) 차이나르네상스(華興資本)의 바오판 회장의 구금 기간이 길어지면서 중국 기업가들을 중심으로 ‘시진핑 공포’가 커지고 있다. 중국 정부의 정책 방향성과 인권 탄압, 코로나19 팬데믹 관리 방식에 불안감을 느낀 중국 중산층과 부유층이 해외로 이주하는 상황도 기업인들의 확신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시장경제 모델에 기반해 성공한 수천명 사업가들이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바오 회장처럼 열정적인 벤처투자가인 이들이 중국 당국에 의해 갑자기 실종될 수 있다는 공포를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바오 회장은 지난달부터 중국 내 최고 사정 기관인 공산당 중앙기율위원회·국가감찰위원회(기율감찰위)에서 구금돼 조사받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기관은 구속영장은 물론 아무런 법적 조치 없이 몇 달씩 밀실 조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차이나르네상스의 전 사장이자 그룹의 홍콩 증권 자회사 회장인 충린과 관련돼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충린이 대표였던 ICBC 인터내셔널 홀딩스는 2017년 차이나르네상스에 2억 달러(약 2600억원)의 신용 대출을 제공했다. 이 대출은 당시 바오 회장이 보유한 법인 주식으로 실행됐는데 이 과정에서 비리가 있었느냐를 조사받는 것으로 추측된다.
WSJ는 “바오 회장은 중국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장기간에 걸친 정부 단속이 끝날 것이라는 희망이 커지고 있을 때 사라졌다”며 “바오 회장에 대한 압수수색으로 중국의 기업, 금융계는 전율에 휩싸였다”고 진단했다.
중국 벤처 투자업계에선 투자자는 물론 벤처기업인이 자칫 ‘흉사’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벤처투자가 위축된 정황도 감지된다.
바오 회장은 모건스탠리와 크레디스위스를 거치며 중국 차량호출기업 디디추싱의 자회사 디디글로벌, 음식배달서비스 메이퇀의 초기 투자자이기도 하다. 징둥닷컴의 미국시장 공모를 주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차이나르네상스는 지난해 6월 말 기준 486억 위안(약 9조1700억원)의 투자 금액을 관리하고 있다. WSJ는 바오 회장을 ’인수·합병(M&A)의 스타’라고 치켜세웠다.
시드니 공과대 중국학 부교수인 총이 펑은 “바오 회장은 중국이 시장 경제를 받아들인 기회를 포착해 자신의 전문적 역량에 의존해 성공을 거뒀다”며 “그런 식으로 성공을 거둔 모든 사업가들은 자신이 위험에 처했다고 느끼고 있다. 이 위험은 매우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바오 회장의 측근은 WJS에 “(지금 상황에 대해) 완전히 환멸을 느낀다”라고 토로했다.
기율감찰위는 지난달 ‘반부패 장기전의 단호한 승리’라는 제목의 발표문을 통해 “금융 엘리트론과 배금론, 서방 추종론 등 잘못된 사상을 타파하고, 쾌락주의와 사치풍조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지난 2년간 중국 정부의 정책 결정 방식과 규제를 목격한 뒤 직접적인 투자를 꺼리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중국 지수는 2021년에 23%, 지난해 말에는 24%까지 하락했다. 홍콩대 경영대학원의 교수이자 재무학과장인 지우 첸은 “중국 정부에 대한 신뢰가 많이 무너졌다”며 “사모펀드와 벤처캐피털이 더 많이 투자하기를 바라는 정부의 열망은 매우 약화됐다”고 말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