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정부의 연금개혁 법안이 진통 끝에 의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두 차례 내각 불신임 투표를 거치면서 의회 내 반대세력을 확인한 데다 대다수 국민의 적대감에 직면한 탓에 마크롱 대통령은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안고 4년 이상 남은 임기를 헤쳐나가야 하는 상황이 됐다.
2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자유·무소속·해외영토(LIOT) 그룹과 좌파 연합 뉘프(NUPES), 국민연합(RN)이 각각 제출한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에 대한 두 건의 불신임안이 하원에서 모두 부결됐다. 특히 야당이 발의한 첫 번째 불신임안은 불과 9표 차이로 가결에 실패했다.
부결에도 불구하고 이번 투표 결과는 마크롱 대통령의 의회 장악력이 크게 약해졌음을 보여준다. 연금 개혁에 뜻을 같이한 야당 공화당의 올리비에 마를렉스 하원 대표가 이날 “우리의 연금제도를 구제하는 개혁이 필요하다”는 당론을 밝혔음에도 공화당 내 이탈표가 나왔다.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국민 여론도 매우 나쁜 수준이다. 프랑스여론연구소(Ifop)가 지난 9~16일 여론조사한 결과 지지율은 전월 대비 4% 포인트 하락한 28%였다. 2018년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며 시작된 ‘노란 조끼 시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특히 의회 표결 없이 정부가 법안을 입법시킬 수 있는 헌법 49조3항의 사용에 대한 비판이 마크롱 대통령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보른 총리는 지난해 5월 취임 이후 헌법 49조3항을 11차례 사용했다. 이 조항의 사용이 합법적이더라도 반대파 사이에서는 국가의 민주적 절차가 우회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진단했다.
다만 정치적 손실과 지지율 하락이 뻔히 예견된 상황에서 연금개혁을 강행한 용기와 진정성은 평가받아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법안 강행 처리와 같은 특단의 방법이 아니면 해마다 누적되는 연금 재정 적자를 해소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프랑스 연금자문위원회에 따르면 이 나라 연금 재정은 올해 18억 유로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며, 적자 규모는 2025년 107억 유로, 2035년 212억 유로로 늘어날 전망이다. 최근 이 문제에 말을 아꼈던 마크롱 대통령은 22일 TV 인터뷰를 통해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프랑스 야당은 한국의 헌법재판소 격인 헌법위원회에 연금개혁 법안의 위헌 여부 검토를 요청한다는 방침이다. 헌법위원회가 이 법안에 대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하면 일부 또는 전부 폐기를 결정할 수 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