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불황 여파가 ‘고급빌딩’까지 들이닥쳤다. 안전지대로 인식됐던 고급빌딩에서 디폴트(채무불이행)와 공실이 확산하고 있다. 지역 중소형 은행에 이어 글로벌 금융위기의 뇌관으로 지목된 상업용 부동산에서 고급빌딩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의 자회사인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보고서를 인용해 지난해 4분기 미국 중심 업무지구의 ‘A급 오피스’ 임대 건수가 2021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다고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주요 도시에 있는 오피스를 월 임대료 사분위 수로 나눠 분석했는데, 상위 25%에 해당하는 A급 오피스의 공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A급 오피스의 임대 건수를 나타내는 지수는 지난해 3분기 101.881에서 4분기 101.411로 하락했다.
고급빌딩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공격적 통화 긴축 속에서도 금융회사·로펌 등 대형 임차인을 겨냥한 고급화 전략으로 위기를 방어했다. 하지만 금리 상승 기조가 계속되고 디폴트 선언이 이어지며 상황은 급격히 악화됐다.
세계 최대 채권 운용사인 핌코(PIMCO)가 최근 시장에서 발생한 대표적인 디폴트 사례다. 핌코는 자금난을 겪으면서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 보유한 대형 오피스빌딩의 차입금을 상환하지 못해 주택담보대출(모기지) 디폴트에 빠졌다.
글로벌 부동산 서비스 기업 세빌스에 따르면 뉴욕 맨해튼의 A급 오피스 약 19%가 지난해 4분기에 임대 매물로 나왔다. 2019년 초의 11.5%에서 8%포인트(p) 가까이 급증했다. 다섯에 하나는 비어있는 셈이다. 시장 조사 업체 그린스트리트는 미국 상업용 부동산이 업무 공간을 줄이려는 임차인의 수요 감소 탓에 지난 1년간 가치가 25% 하락했다고 추산했다.
WSJ은 “2021년과 달리 경기 침체를 걱정하고 비용 절감을 모색하는 기업이 더 많아졌다”며 “최근 발생한 디폴트 사례와 임대 데이터는 고급빌딩 중 상당수가 위기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