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되돌린 거 같네요. 그대로입니다. 변한 게 하나도 없네요.”
전동휠체어에 앉은 유진우(27)씨는 1년 3개월여 만에 다시 찾은 학교 기숙사 앞에서 나지막이 한숨을 뱉어냈다. 그는 지난해 1월 “대학원에 들어와 느낀 것은 장애인은 목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라는 말을 남긴 채 자퇴서를 냈다. 중증뇌병변장애인인 유씨는 그렇게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품어왔던 목회자의 꿈을 접었다.
유씨가 꿈을 포기한 건 장애인이란 이유로 예비 목회자로서 평등하게 주어져야 할 권리와 기회가 박탈됐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최근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가 정치권의 엇갈린 반응까지 얽히고설켜 연일 논란의 중심에 서고 있지만, 신학교 캠퍼스 내에서의 장애인 권리문제 또한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유씨는 2020년 4월 당시 입사 신청을 위해 찾아간 기숙사를 보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두 개로 나누어진 기숙사 왼쪽 건물은 출입문 앞에 설 수조차 없었다. 도로와 건물 입구 사이엔 경사로 대신 11개의 계단이 싸늘하게 유씨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경사로가 있는 오른쪽 건물이라고 상황이 나을 건 없었다. 1층은 독서실과 사무 공간으로 채워져 있고 생활관은 2, 3층에 있었지만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유씨는 “휠체어 장애인에겐 ‘있지만 없는 건물’처럼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19일 만난 유씨와 함께 신대원 시절 강의를 듣기 위해 가장 많이 드나들었던 건물로 이동했다. 입구에서부터 묵직하고 커다란 여닫이문이 가로막았다. 뇌병변장애인에겐 ‘터치식’ 자동문 버튼이 비장애인의 허리 높이 위로 부착돼 있으면 불편을 줄 수 있다. ‘센서 인식’ 자동문이 권장되는 이유다. 강의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내부엔 정면 거울을 찾아볼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의 거울은 탑승한 휠체어장애인이 내릴 때 자신의 뒤에 있는 문이 잘 열리는지, 입구에 장애물은 없는지 확인할 수 있게 도와준다. 유씨는 “측면에 거울이 부착된 엘리베이터를 종종 보는데 거울 위치만 바뀌어도 장애인 친화적 환경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강의실을 둘러본 유씨는 “높낮이가 조절되는 책상이 없어서 학교 다니는 내내 휠체어에 앉아 책상을 허벅지에 올려놓다시피 한 채 강의를 들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한 층 아래에 있는 장애인 화장실을 들렀다. 출입구에 버튼식 자동문이 설치돼 있어 들어가기는 쉬웠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전동휠체어를 돌려 변기에 앉기를 시도했지만 공간이 충분치 않아 아슬아슬하게 안전바와 충돌을 피해야 했다. 화장실 내에서 긴급한 도움이 필요할 때 ‘골든 타임’을 책임져 줄 비상벨도 없었다. 장애인 화장실 내부에 마련돼 있어야 할 세면대도 보이지 않았다. 유씨는 “휠체어에 탄 장애인은 볼일을 본 뒤 손을 닦기 위해 다시 비장애인 화장실의 여닫이문을 발로 밀고 들어가야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은 비단 한신대만의 문제일까. 국민일보 취재팀은 장애인의 날(20일)을 앞두고 서울의 주요 신학교 3곳을 찾아가 장애인 이동권 실태를 들여다 봤다. 이계윤 장애인복지선교협의회장의 감수를 받아 캠퍼스 내 본관(강의동) 채플실 기숙사 학생회관 등 주요 건물을 둘러보며 체크리스트를 점검했다. 점검 결과 ‘장애인 노인 임산부로서 장애인 등이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과 설비를 동등하게 이용(장애인등편의법 4조 접근권)’하기엔 보완이 시급해 보였다.
건물 내외부 경사로의 경우 대부분 법률 시행규칙이 정한 ‘기울기 5도’를 지키고 있었지만, 일부는 무늬만 경사로일 뿐 휠체어장애인 스스로 이동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기울기가 기준치의 3배가 넘는 18도에 달해 비장애인인 기자가 걸어서 오르기 힘든 곳도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정면 거울이 부착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표시 버튼도 아쉬움이 남았다.
대체로 엘리베이터에 점자 표시 버튼을 적용했지만 코로나 이후 감염 예방을 위한 항균 필터가 부착돼 있어 촉감으로 점자를 식별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엘리베이터 탑승이 일상화된 시각장애인이라 하더라도 위아래 버튼은 인식의 어려움이 덜하겠지만 고층 건물의 경우 지하와 지상층의 숫자 배열이 제각각이라 혼란을 피할 수 없어 보였다. 유씨는 “항균 필터를 부착하더라도 버튼 좌우에 점자 숫자 스티커를 붙인다면 안내를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장애인화장실도 보완이 필요해 보였다. 감신대를 제외하곤 화장실 내 공간에 휠체어 회전 반경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입구가 좁아 휠체어 진입이 어려운 곳도 있었다. 비상벨이 설치된 곳은 단 한 곳에 그쳤다.
현재 주요 신학대 신학과와 신대원에는 20여명(감신대신대원 1명, 장신대 신학과 1명·신대원 10명, 총신대 신학과 8명, 신대원 1명)의 장애인이 예비 목회자로서 길을 걷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제10조)은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이 회장은 “기독교의 진리를 바탕에 둔 교회와 신학교가 헌법보다 더 상위에 있는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있으면서도 헌법이 명시한 권리조차 지키지 않는다면 본질을 잃은 채 껍질만 있는 기독교인에 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기영 신지호 기자 유경진 인턴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