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최대 규모 가상화폐 채굴업체와 상업은행, 개인 등이 미국 제재 대상에 추가됐다. 이들 업체는 러시아에 대한 기존 제재를 회피하는 데 관여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20일(현지시간) “가상화폐 채굴 업체인 비트리버와 10개 계열사를 제재 대상에 올렸다”며 “이들 기업은 대규모 채굴장을 운영함으로써 러시아가 천연자원을 현금화하는 것을 도왔다”고 밝혔다. 가상화폐 채굴업체가 제재 대상에 포함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비트리버는 2017년 러시아에서 설립된 최대 채굴 업체 중 하나로 지난해 스위스로 본사를 옮겼다.
러시아는 에너지자원이 풍부하고 기온도 낮아 과거부터 가상화폐 채굴의 최적 장소로 꼽혀왔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해 5월 중국이 가상화폐를 제재한 뒤 암호화폐 채굴 기업의 국제 이동을 조사했는데, 러시아가 20만5000대로 가장 많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재무부에 따르면 러시아는 가상화폐 시장 규모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크다.
이 때문에 천연가스나 석유 수출대금을 달러화로 결제받기 어렵게 된 러시아가 대안으로 가상화폐를 활용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돼 왔었다. 기업들이 가상화폐를 지급수단으로 채택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는 관측도 꾸준히 제기됐다.
북한이나 이란 등 다른 제재 대상 국가들도 가상화폐를 회피 수단으로 꾸준히 활용해 왔었다. 미 재무부는 최근 북한이 가상화폐 절도와 해킹으로 무기 개발 자금을 축적하는 등 제재 회피에 나서고 있다며 북한의 가상화폐 지갑 주소를 제재 대상에 올리기도 했다. 에릭 펜턴-보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 조정관도 이날 싱크탱크 신미국안보센터(CNA) 주최 세미나에서 이를 지적했다.
재무부는 이날 러시아 민영 은행 트란스카피탈방크(TKB)를 제재 명단에 올리며 “제재 회피에 관여했다”고 지적했다. TKB는 중국 등 아시아 여러 은행과 중동 은행에 자체 인터넷 기반 결제 시스템을 활용한 서비스를 제공, 국제 제재를 회피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했다고 재무부는 설명했다. 국제금융결제망 스위프트(SWIFT) 차단 조치를 우회하기 위해 대안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제재 대상 고객에 달러 지불 처리가 가능하도록 제안했다는 것이다.
재무부는 러시아 재벌인 콘스탄틴 말로페예프 일가 및 관련자 40여 명도 같은 혐의로 제재 명단에 추가했다. 말로페예프는 푸틴 대통령을 지지하는 극우 성향의 방송사 차르그라드TV를 소유한 러시아 미디어업계 거물이다. 재무부는 “차르그라드는 친러시아 선전과 허위 정보를 퍼뜨리는 광범위한 악성 영향력 네트워크 기반”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미 법무부는 말로페예프를 제재 위반 및 사이버 범죄 혐의로 기소한 바 있다.
미 국무부도 우크라이나 침공 및 인권 침해 행위에 가담한 정황이 의심되는 러시아 국적 635명에 대한 비자 제한 조치를 발표했다.
브라이언 넬슨 차관은 “재무부는 미국이 러시아에 내린 제재를 피하거나 피하려고 시도한 누구라도 목표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