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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침공 55일째, 피란길에 올랐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지 55일째 되던 날인 지난 19일 ‘고향’인 하르키우를 떠났다고 했다. 끝까지 고향을 지키려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은 전쟁이 시작됐을 때보다 더 마음을 아프게 했다.

우크라이나의 부활주일인 24일을 앞두고 서진택 선교사가 보내온 편지엔 피란길에 오른 19일부터 22일까지의 고된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GMS 소속인 서 선교사는 “‘지금 있는 곳’ 하르키우에서 속히 빠져나오라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 피란길에 올랐다”고 전해왔다. 그는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12살 때 이곳에 왔고 2013년 우크라이나 여성과 결혼했다. 하르키우는 그에게 고향이나 다름없다. 피란길엔 아내와 두 아들, 장인 장모 등이 함께했다.


피란길 첫날인 19일 일행은 드니프로 강을 건너 서울에서 부산 거리인 360㎞를 달린 끝에 올레크산드리아에 도착했다. 숙소는 올레크산드리아 승리교회였다. 침공이 있기 55일 전까지만 해도 익숙했던 일상은 낯설게 느껴졌다.

서 선교사는 “밤 11시까지 집안에서 전등불을 켤 수 있었고 포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면서 “신호등이 작동돼 빨간불을 기다리고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작동하는게 익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튿날 피란길 여정은 계속됐다. 목적지는 빈니차였고 숙소는 생명교회였다. 420㎞를 달려 도착한 이곳에서 이틀을 보냈다.
서 선교사는 “전쟁 동안 두 아들은 또래가 없어 외로워했는데 이곳 숙소에서 또래 친구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다시 이동했다. 5시간 20분을 달려 400㎞ 떨어진 이바노프랑키비츠주에 도착했다. 고향인 하르키우에서 1180㎞ 떨어진 곳이다.


이바노프랑키비츠주를 목적지로 결정한 이유는 전쟁이 시작될 때부터 피란을 요청해 온 사역자가 있는 곳인데다 서쪽 지역 중 하르키우와 가깝기 때문이다.
서 선교사는 “이바노프랑키비츠 지역으로 진입하는데 황새들이 우리를 맞이해 주는 걸 보고 ‘이젠 진짜 안전지대구나’ 싶었다”고 했다.

피란길 내내 하나님의 보호하심도 경험했다.
드니프로강을 건너기 전까지 내리던 비는 강을 건너 동쪽보다 그나마 안전한 곳에 진입할 때쯤 그쳤다. 서 선교사는 “안개가 끼고 비가 올 때는 폭격 하는 게 훨씬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피란길에도 섬김의 자세는 잃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군인이 검문하는 곳을 지날 때면 갖고 있는 통조림 등 비상식량과 전도지를 전달했다.
서 선교사는 “우크라이나는 4월 24일이 부활절이다. 안정을 취하고 기도하면서 서쪽에서 할 수 있는 사역을 살펴보려고 한다”면서 편지글을 맺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