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 최고지휘관인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합참의장)이 지난주 우크라이나 동부 최전방 지역을 직접 방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러시아군의 군수 보급 문제와 부대 간 협력 문제가 심화되자 이를 직접 타개하기 위한 방문으로 보인다. 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암수술설까지 나오는 등 러시아 내부도 혼란한 상황이다.
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당국은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이 최근 며칠간 동부 돈바스(도네츠크·루한스크)를 포함한 동부전선의 최전방 진지에 머물렀다. 그는 전날 러시아군 점령지인 이지움의 제2통합육군 및 공수부대 기지를 방문했고 현재는 러시아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군은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이 러시아로 돌아간 뒤 동부전선을 공격해 러시아 장군 1명을 포함해 200여명의 러시아군을 사살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이 이지움에서 다리와 엉덩이에 파편이 박히는 부상을 입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러시아 소식통 발언을 인용해 그가 이지움에서 부상을 입어 황급히 귀국해 수술했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라고 보도했다.
총참모장이 최전방을 찾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는 평가다.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은 푸틴 대통령,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함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담한 러시아군 핵심 인사다. 전문가들은 이번 방문이 러시아군 내부 문제가 커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러시아가 동부 탈환 전략을 펼치고 있지만 여전히 군수 문제를 겪고 있고, 심지어 점령한 동부지역 일부를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으로 조금씩 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과 함께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제이슨 크로 하원 의원은 NYT에 “러시아군 수천명이 전사했고 사기는 떨어졌으며, 동남부에서 공세가 정체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쟁 이후 러시아가 최소 12명의 장군을 잃은 점 또한 러시아군의 사기를 꺾은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더힐에 따르면 제임스 스타브리디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전 유럽연합군 최고사령관은 “12명의 장군의 죽음만 보면 현대사에서 이에 비견할 전례가 없다”며 “미국은 20년간 전쟁을 벌인 아프가니스탄전은 물론 이라크전 사례까지 통틀어 실제 전투에서 전사한 장군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비꼬았다.
또 푸틴 대통령이 조만간 암수술을 받을 예정이며, 그사이 최측근인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러시아 국가안보위원회 비서관이 대통령 권한을 대행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데일리메일 등 외신은 SNS를 기반으로 한 러시아 독립언론 제너럴SVR을 인용해 이같이 전했다. 다만 크렘린궁은 푸틴 대통령의 건강이상설을 부인하고 있다.
상황이 악화되자 러시아는 ‘전승절(제2차 세계대전 승리 기념일) 자축설’을 부인하며 한껏 몸을 낮추는 중이다. 텔레그래프는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에서 러시아군이 대규모 손실을 입어 전승절 열병식도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군이 점령지에서 곡물이나 건축자재에 이어 농기계까지 훔쳐 가는 것으로 드러났다. CNN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멜리토폴의 한 농기계 판매점에서 대당 30만 달러(3억7000여만원)의 콤바인 수확기 등 총 500만 달러(63억원)에 달하는 농기계를 훔쳐 갔다. 심지어 일부 농기계는 1100㎞ 떨어진 체첸까지 가져간 것으로 전해졌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