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살인적인 미국의 생활비 위기가 정치 지형을 크게 뒤흔들고 있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POLITICO)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경제적 고통의 책임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는데 그 원인을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라고 생각하지 않고 도널드 트럼프 현 행정부에게 돌리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해(2024년) 대선 승리를 견인했던 지지층 내부에서조차 균열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서, 다가오는 2026년 중간선거를 앞둔 공화당에 비상이 걸렸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는 미국인들이 느끼는 경제적 박탈감이 그야말로 심각한 위험 수위에 다다랐음을 보여준다.
응답자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약 46%가 현재 미국의 생활비 수준이 "기억하는 한 최악"이라고 답했다.
지난해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 당시 후보에게 투표했던 보수적인 유권자들 중에서도 37%가 이에 동의했다.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상당한 또는 모든 책임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46%로,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을 탓한 비율 29%를 크게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취임 초기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인플레이션의 책임을 조 바이든 전 대통령에게 돌리면서 자신을 방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임기 1년이 지난 지금, 유권자들은 더 이상 과거를 탓하지 않고 현재 권력자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
애리조나 주 공화당 전략가인 배럿 마슨은 유권자들이 이제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을 잊어버리고 분노의 화살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돌리는 건 순식간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지금 가장 뼈아픈 대목은 핵심 지지 기반이라고 할 수가 있는 '트럼프 연합'이 물가를 비롯한 각종 경제 문제로 분열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더 이상 스스로의 정치 성향에 대해서 열성적인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공화당원'이라고 규정을 하는 것에 대해서 거부하는 온건 지지층의 이탈이 뚜렷한 상황이다.
자신을 MAGA 공화당원으로 생각하지 않는 트럼프 투표층의 경우, 식료품비나 공공요금 등 구체적인 생활비 부담에 대해서 트럼프 행정부의 책임이 대단히 크다고 보는 경향이 강했다.
미국인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분야는 경제 중에서도 일상생활과 직결된 곳이었다.
복수 응답이 가능한 여론조사에서 식료품비가 절반에 육박하는 45%로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혔다.
그 다음으로는 38%의 주거비였고, 의료비가 34%로 그 뒤를 이었다.
미시간 대학의 소비자 심리지수 또한 11월 들어 기록적으로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이러한 미국인들의 비관적인 전망을 뒷받침했다.
민주당은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경제 심판론'을 내년(2026년) 11월 중간선거의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다.
실제 최근에 들어서 뉴저지와 버지니아 선거, 그리고 테네시주 연방하원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은 '지불 능력(Affordability)' 이슈를 집중 공략해 재미를 봤다.
특히 지난 2일 화요일 테네시 주 연방하원 보궐선거에서 공화당 맷 밴 엡스 후보가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기록했던 22% 포인트 격차에 한참 못 미치는 9% 포인트 차 승리에 그친 것이 공화당에 강력한 경고가 됐다.
쿠시 데사이 백악관 대변인은 이번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경제 재앙을 수습하고 있으며, 그 정책 효과가 이제 부터 시작이라고 주장하면서 반박했다.
문제는 이같은 측근들의 적극적인 옹호 주장에도 불구하고 직접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내보내는 메시지가 혼선을 빚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토요일 소셜 미디어에서 자신에 대해 “I AM THE AFFORDABILITY PRESIDENT”라고 칭했다.
자신이 물가, 생활비를 잡은 대통령이라는 의미였는데, 며칠 뒤 국무회의에서는 'Affordability'라는 단어가 민주당 측의 사기(Scam)라고 주장하면서 말을 바꿨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경제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범했던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마이클 스트레인 소장은 물가가 여전히 높은데 경제가 튼튼하다고 주장하는 것을 유권자들의 현실 인식과 괴리된 위험한 전략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