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민들의 민주화 시위를 정부가 유혈 진압한 6·4 천안문 사태 33주년인 올해 중국과 홍콩 어느 곳에서도 추모 집회가 열리지 않았다. 천안문 사태는 중국의 집단기억에서 사라졌고, 일국양제가 적용되는 홍콩에서조차 잊혀진 일이 되고 있다.
5일 홍콩 명보 등에 따르면 중국판 카카오톡인 위챗에서 전날 ‘89위안’이나 ‘64위안’을 송금하려면 “나중에 다시 시도하라”는 안내문이 떴다. 중국에선 천안문 사태가 벌어진 1989년 6월 4일을 떠올리게 하는 숫자를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있다. 또 시위를 상징하는 ‘이것은 나의 의무’라는 문구도 중국 SNS 웨이보에서 한때 검색이 차단됐다. 주중 독일대사관은 지난 3일 밤 웨이보 계정에 아무런 설명 없이 촛불 사진을 올렸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당국의 인터넷 검열이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 포털 바이두에서 천안문 사태를 검색하면 1976년 1월 저우언라이 총리 사망 후 당국이 애도 행위를 금지하자 격분한 시민들이 그해 4월 4일 천안문 광장에 모여 대규모 시위를 벌인 일이라고 나온다. 1989년 중국 정부가 정치 개혁,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에 나선 대학생과 노동자들을 군을 동원해 유혈 진압하면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설명은 찾아볼 수 없다. 학교에서도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90년대 이후 태어난 젊은 세대는 천안문 사태를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홍콩 당국은 올해도 천안문 사태 희생자 추모 집회를 불허했다. 홍콩에선 1990년부터 매년 시민단체 주도로 추모 집회가 열렸지만 2020년부터 코로나19를 이유로 관련 행사가 금지됐다. 2020년 6월 말 홍콩 내 반중국 행위를 처벌하는 국가보안법이 시행된 이후로는 더욱 위축됐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홍콩 시민 수백명이 거리 곳곳에서 촛불을 들었지만 올해는 집회 신청조차 없었다.
홍콩 경찰은 행사 장소인 빅토리아 파크를 봉쇄하고 공공장소에서의 개별 행동도 불법 집회로 간주돼 체포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2019년 반정부 시위를 상징하는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이 있으면 몸과 가방을 뒤졌다. 검정 옷에 흰 국화를 들었다가 검문당한 한 남성은 AFP통신에 “경찰이 사람들의 주의를 끌 수 있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말했다.
홍콩 당국의 강력한 경고에도 개인적으로 추모의 뜻을 표했던 시민단체 회원 일부는 경찰에 체포됐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홍콩 주재 외국 공관은 사무실과 SNS에 촛불을 켜는 것으로 애도의 뜻을 전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페이스북에 촛불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려 “홍콩에서 6·4에 관한 집단기억이 조직적으로 지워지고 있다”며 “그러나 나는 이러한 난폭한 수단이 사람들의 기억을 지울 수 없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