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미국의 ‘뒷마당’인 중남미 주요 국가들의 최대 교역국 지위를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멕시코를 제외한 국가에선 이미 중국이 미국을 추월했고, 격차도 넓혀가고 있다. 중국은 고립주의 행동노선을 폈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 이미 추월을 시작하며 영향력을 넓혀갔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뒤늦게 관계 복원에 나섰지만, 중국과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로이터통신은 8일(현지시간) “유엔 무역자료를 분석한 결과 멕시코를 제외한 중남미 국가의 중국 수출입 규모는 지난해 2470억 달러로 미국 교역 규모 1749억 달러보다 훨씬 많다”고 보도했다.
멕시코는 미국·캐나다와 북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여전히 미국이 1위 파트너다. 미국과 멕시코의 교역 규모가 워낙 커서 이를 포함하면 중남미 최대 교역국은 미국이 된다. 양국의 지난해 교역 규모는 6070억 달러로 2015년(4960억 달러)보다 1110억 달러 늘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중국과 멕시코 교역 규모도 750억 달러에서 1100억 달러로 350억 달러 증가했다.
특히 중국은 브라질, 칠레, 페루, 아르헨티나 등 남미의 다른 주요 국가들의 1위 교역 파트너로 올라섰다. 중국은 중남미산 대두와 옥수수, 구리 등 농산물과 원자재를 대규모로 사들였고, 중국산 제품의 입지도 강화했다. 인프라 투자를 통한 현금 공세로 이들 국가와 결속도 다지고 있다.
로이터는 “멕시코를 뺀 나머지 중남미 지역의 대중 교역 규모는 트럼프 행정부 때 이미 대미 교역보다 많아졌고, 지난해 1월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격차가 더 벌어졌다”고 분석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최근 중남미에 대한 외교적 공백을 없애고, 중국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해 외교적 접촉을 늘리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중남미는 미국의 뒷마당이 아니라 앞마당”이라며 관계 개선 의지를 다졌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전날 콰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등 이른바 북부 삼각지대의 이민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2억 달러를 투자하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특히 “중국이 ‘부채 함정’을 만들기 위해 투자를 이용하고 있다”고 경고하고, 미국이 신뢰할만한 교역국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한 당국자는 “중국은 일단 현금을 꺼낼 준비가 돼 있다. 미국으로서는 지는 싸움”이라고 로이터에 말했다.
브라질 컨설팅업체 BMJ의 웨우베르 바하우는 “중국은 교통이나 인프라 투자를 가져오지만, 미국은 말뿐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며 “중남미 정부들은 ‘(미국이) 말은 많은데 도대체 돈은 어디 있느냐’고 불평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주정상회의 첫날인 이날 중남미 버전의 경제협력 모델인 ‘경제 번영을 위한 미주 파트너십’(APEP) 구상을 내놨다.
공급망 강화, 혁신, 기후변화 등 주요 기둥(메인 주제)을 중심에 두고 있다. 디지털 경제의 표준 추구, 신흥 기술 지원, 에너지와 식량 공급의 회복력, 강력한 노동 및 환경 기준 등 세부 사항도 포함돼 있다.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와 유사한 구조다. 미 행정부 고위당국자는 이날 미주 정상회담 관련 언론 브리핑에서 “IPEF와 구조적으로 어느 정도 유사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미주개발은행(IDB) 활성화 등 경제 기구를 통해 중남미 투자를 활성화하고, 이민자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국가를 지원하는 방안도 발표된다고 설명했다. 백악관은 코로나19 대응 등 보건 시스템 지원을 위한 ‘미주 보건·회복력 행동계획’도 마련했다.
미 고위당국자는 바이든 대통령이 중남미 지역에 대한 중국의 무역 확대에 대해 언급할 것이냐는 질문에도 “그렇다”고 답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