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에 대한 헌법상 권리를 폐기한 미국 연방대법원 결정이 공화당에 ‘불안한 승리’가 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결정이 11월 중간선거에서 무당파 스윙보터 표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대법원 발(發) 문화전쟁’이 유권자 지형을 재편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전국 하원 선거운동 공화당 전략가 존 토마스는 “우리는 (선거 과정에서) 경제나 조 바이든 대통령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낙태는 우리가 원하는 대화 주제가 아니다”며 “이건 공화당이 지는 사안”이라고 26일(현지시간) 폴리티코에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공화당 출신 의원도 “40년 넘게 정착됐던 법의 변경은 사회적 경악을 일으킬 것이고, 민주당은 이를 득표율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며 “공화당은 낙태법 폐기 결정이 없었더라면 얻을 수 있을 의석 몇 개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화당이 이번 결정으로 중간선거에서 승리할 의석수가 45석에서 30석 정도로 줄어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폴리티코는 “공화당 전략가와 당 관리들은 중간선거 승리를 향해 모든 것들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지금 (대법원의) 결정이 내려지는 걸 원치 않았다”며 “공화당에 확실한 대가를 치르게 할 승리”라고 평가했다.
실제 미 CBS 방송이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와 함께 지난 24∼25일 성인 159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 59%는 ‘대법원판결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정당별로는 민주당 지지층 83%가 반대했고, 공화당 지지층 78%는 찬성했다. 이번 사안이 지지층 결집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의미다. 휘발유 가격 폭등 등 인플레이션으로 지지층 지지 이반이 발생한 바이든 행정부에는 호재가 될 수 있다.
스윙보터인 무당파 응답자 62%도 이번 결정을 반대했다. 공화당의 한 선거 분석가는 “이번 결정이 공화당 쪽으로 기운 스윙보터에 미칠 영향이 가장 중요하다”며 “(낙태권 문제는) 그들이 민주당에 투표해야 할 이유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대법원의 보수화 역시 민주당의 집토끼 전략을 강화할 수 있다. 대법원은 최근 공공장소 권총 휴대를 허용하는 결정을 내렸고, 토머스 클래런스 대법관은 피임이나 동성혼 판례 재검토 필요성도 주장했다. CBS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55~57%는 대법원이 이에 대한 추가 제한을 할 것 같다고 봤다.
워싱턴포스트(WP)는 “대법원판결 직후 민주당 (개인 중심의) 풀뿌리 모금 활동이 매우 증가했다. 온라인 모금 활동이 가장 많은 날이 됐다”고 보도했다.
팝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와 올리비아 로드리고, 영화배우 크리스 에번스 등 인기 스타들의 릴레이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머라이어 캐리는 “여성의 권리가 눈앞에서 무너지는 세상에 살아야 하는 이유를 11살 딸에게 설명해야 한다.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다만 휘발유 가격 폭등 등 물가상승 문제가 워낙 커 공화당 우세인 선거 구도가 당장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CNN은 “대다수 미국인은 대법원 결정에 반대했지만, 유권자들이 중간선거에서 이를 고려할 것인지 말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평가했다.
폴리티코는 “여야의 어떤 정치 전문가들도 이번 결정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승리를 막을 만큼 선거 지형을 심각하게 뒤엎을 것으로 예상하지 않는다”며 “최근 유권자 여론조사에서도 낙태 문제는 일자리나 경제 문제보다 중요도가 낮았다”고 설명했다.
공화당 선거운동 전문가 존 브라벤더는 “(유권자에게) 보편적 이슈는 경제에 대한 우려”라며 “경제 문제는 다른 어떤 이슈보다 선거를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