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54년 태어나 67세로 사망한 아베 신조 前 총리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유력한 정치인 집안 출신이다.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 용의자였다.
하지만, 1945년 당시 혼란한 정국을 틈타 처형을 면했고, 이후 승승장구하며 56, 57대 총리를 지냈다.
부친인 아베 신타로는 외무상을 역임했지만 총리는 되지 못했는데 자민당의 대표적인 온건 보수 중진 정치인으로 활약했다.
아베 신조 前 총리는 이같은 일본 정계 거물들인 외조부와 아버지를 보면서 자연스레 정치에 관심을 가졌고 도쿄에 위치한 세이케이 대학 법학부 정치학과 졸업 후 1982년 부친 아베 신타로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993년 중의원에 당선된 아베 신조 前 총리는 2006년 만 52세의 나이로 최연소 총리에 오르며 주목 받았지만 추문과 망언, 정치 스캔들까지 겹쳐 1년 만에 물러났다.
5년 뒤인 2012년 12월 두 번째 집권에 성공한 아베 前 총리는 금융완화와 재정지출 완화를 핵심으로 하는 경제정책인 이른바 ‘아베노믹스’를 추진하며 한때 7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7년 사학 스캔들, 2019년 벚꽃 스캔들, 2020년 코로나19 대응 미숙 그리고 검찰 간부 내기 마작 스캔들 등이 잇따라 터지며 인기가 떨어져 한 때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20%대까지 수직 하락하기도 했다. 결국 2020년 8월 아베 신조 前 총리는 궤양성 대장암 재발을 이유로 총리직을 사임하면서 일본 헌정 사상 가장 오래 집권한 총리가 됐다.
사임 후에도 아베 신조 前 총리는 집권 자민당의 최대 파벌 수장을 역임하며 여전히 일본 정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아베 신조 前 총리는 일본 내 보수우익의 대표주자인데 집권 당시 한국에 줄곧 강경한 자세를 취했다.
특히 재집권을 시작한 이듬해인 2013년 아베 당시 총리는 현직 총리라는 신분을 가지고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해서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다.
첫 집권 이후 불과 1년만에 물러나게된 원인이 어정쩡한 중도적 스탠스였다고 판단한 아베 신조 前 총리는 재집권하고 나서는 완전히 극우보수적인 모습을 보이며 극우 지지층을 결집시키면서 장기집권의 기반을 다져나갔다.
이같은 변신에 한국과 중국의 반발이 거세지자 그 후 봄·가을제사와 종전기념일(8월 15일)에 맞춰 아베 당시 총리는 직접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는 대신에 자신의 내각 관료들과 공물을 보내는 모습을 보였다.
아베 신조는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로는 세간의 이목을 의식하지 않은 채 거리낌 없이 참배를 진행했다.
퇴임 이후 공개된 참배만 총 5차례에 달했다.
2019년 7월에는 한국 주력 산업 반도체·디스플레이를 겨냥해 감광액(포토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핵심 품목 3종에 대한 수출을 제한하는 조처를 전격 발표했다.
당시 한국 대법원이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을 내리자 이에 대한 경제 보복 조치였고 이로 인해 한일 관계는 급냉전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