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를 암살한 배후로 의심을 받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를 겨냥해 “내 입장은 분명하다. 이해하지 못한다면 한동안 함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우디 방문을 앞두고 나온 바이든 대통령의 이 발언은 ‘원유 증산을 위해 인권 문제를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을 방문해 야이르 라피드 임시 총리와 기자회견을 진행한 예루살렘에서 “사우디를 방문해 빈 살만 왕세자에게 카슈끄지 문제를 어떻게 말하겠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나는 항상 인권 문제를 거론해왔다.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조용한 적이 없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까슈끄지에 대한 내 입장은 분명하다. 만약 사우디든, 어디든, 누구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한동안 함께할 수 없다”며 “사우디를 방문하는 목적은 미국의 국익을 키우기 위해서다. 우리는 중동에서 멀어지는 실수를 저질렀다. 중동 지역을 이끌면서 러시아나 중국이 치고 들어올 수 있는 공백을 만들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미국 정보당국에서 카슈끄지의 암살 배후로 지목된 인물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빈 살만 왕세자를 고립하겠다며 만남을 거부해 왔다. 이에 사우디는 중국 위안화를 통한 원유 대금 결제 가능성을 언급해 미국의 신경을 자극하며 맞섰다. 현재 사우디의 원유 대금 결제는 달러화로만 이뤄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인플레이션과 공급망 차질,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국제유가가 상승하자 ‘중동 외교’에 나섰다. 8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배럴당 95.78달러에 마감됐지만, 지난달 한때 100달러를 크게 상회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제 이스라엘에 이어 사우디를 방문한다. 15일 팔레스타인과 사우디를 찾은 뒤 16일 걸프협력회의(GCC) 정상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사우디 방문 길에 살만 빈 알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과 함께 빈 살만 왕세자와 회담이 예정돼 있다. 이를 놓고 미국 안에선 ‘바이든 대통령이 인권을 석유와 바꾸려 한다’는 비판론이 불거졌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사우디에서 국제유가 상승 억제를 위한 원유 증산을 끌어내기 위해 인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카슈끄지의 약혼자였던 하티제 젠기즈는 최근 미국 뉴스채널 스펙트럼뉴스에 “바이든 대통령이 빈 살만 왕세자와 면담할 때 카슈끄지 문제를 거론하겠다는 약속을 미국 정부 관계자로부터 받았다”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