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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드 이후 한국교회가 나아갈 길 [젊은이를 위한 잠언2]


2020년 초부터 시작된 정체불명의 전염병은 순식간에 전 세계에 확산돼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염병을 Covid-19로 명명하고 팬데믹 선언을 했다. 모든 국가는 국경을 봉쇄했고 사람들의 이동을 제한했으며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이 없는 상태에서 전 세계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당혹스러움에 직면했다.

모임이 금지된 교회는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가 위협 받을 정도의 직격탄을 맞았다. 마스크는 설교자나 예배자에게 필수품이 됐고 찬양대와 봉사자가 사라졌으며 교회의 거의 모든 사역이 올스톱 되다시피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6만여 교회 중 1만개가 사라지기도 했다(전체교회 16%·보건복지부).
3년 가까운 팬데믹은 대·중·소형 교회 구분 없이 출석 숫자가 제한돼(19명, 10%, 20%, 50%) 교회 생태계를 거의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갔다. 팬데믹이 거의 끝나갈 무렵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해 세계는 서구권과 동구권이라는 양진영으로 나뉘어져 또 다른 정치, 군사, 경제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럴 때 한국교회는 어떻게 대처하며,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1.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심
위기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소형과 중형 교회가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위기 속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4:19)고 하셨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낚싯꾼이 아닌 어부로 부르셨다. 어부와 낚싯꾼은 차이가 있다. 어부는 생업으로 고기를 잡지만 낚싯꾼은 취미로 고기를 낚는다. 어부는 그물로 한 번에 많은 고기를 잡지만 낚싯꾼은 낚싯대로 한 마리씩 잡을 뿐이다. 물론 어부나 낚싯꾼은 고기를 잡기 위해 물고기가 많은 곳, 즉 어장이 형성된 곳에서 그들의 도구를 이용해 고기잡이를 한다. 물고기는 먹이가 풍부하거나 수온이 맞는 곳으로 모이게 마련이다.
사람으로 치면 인구밀집지역인 대단위 아파트나 신도시 혹은 교육 여건이 좋은 곳에 모여 살기 마련이다. 바울 선교의 특징도 당시의 대도시 중심으로 복음을 전했다.

어부의 도구가 그물이듯 오늘날 우리의 도구는 무엇일까.
미디어를 활용한 선교 도구가 우리의 그물이 될 수 있다. 4차 산업시대를 맞이해 스마트폰, 메타버스, SNS 등의 다양한 미디어 환경이 21세기의 그물이 될 수 있다. 현대의 그물로 사람낚는 어부가 돼야 한다.


2. 중형 교회가 한국교회의 중심축이 될 것이다.
팬데믹으로 인해 교회에서 현장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예배를 포기하거나 아니면 온라인 예배를 드렸다. 유투브를 이용한 온라인 예배가 완벽한 예배 형태는 아니기에 현장 예배의 감격이나 감동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몇 번이야 은혜 받을 수 있겠지만 이것이 습성이 되면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화면 시청 예배로 전락할 수 있다.
설교자 입장에서 볼 때 팬데믹 상태에서의 설교는 허공에 던지는 설교였다. 성도의 반응을 확인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팬데믹 이후 한국교회의 첫째 과제는 신앙회복에 있다. 알곡과 쭉정이로 확연하게 나누어진 현실에서 흩어진 성도들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
‘집합금지행정명령’에 따라 예배 인원이 19명으로 제한되고, 방역수칙을 어기는 교회는 고발돼 언론에 교회의 부정적인 면만 부각될 때에도 책임있는 초대형 교회와 교회연합기관은 무기력하기만 했었다. 대형교회로서의 선도적 역할을 회피하고 정권의 정책에 맞추는 일에만 급급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헌법에 명시된 종교의 자유를 외치며 ‘정교분리’를 부르짖은 교회는 대형교회가 아니라 중형교회였고 이들 교회는 전국적 단위로 조직해 리더십을 강화했다. 이런 점에서 한국교회를 선도하는 영향력은 대형교회에서 중형교회의 연합체로 구심점이 옮겨질 것이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내세웠던 초대형 교회는 한국의 자랑이었건만 세대교회가 되면서 사회적 책임감에 소홀한 결과 대형교회로서의 리더십을 상실했다.
중형교회가 많아야 하는 이유는 대형교회에 몰려드는 정치적 유혹과 압박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이는 교회의 건전성과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마을교회로 전환해 주민 친화적인 교회가 돼야 한다.
20세기에 세계교회를 휩쓴 운동이 3가지 있었다.
빌브라이트의 C.C.C, 빌리 그레이엄의 대형전도집회, 맥가브란과 피터 와그너의 풀러학파가 일으킨 교회성장학이다.
21세기 들어서 이 운동은 약화됐고 교회성장(Church Growth) 이라는 용어대신 부흥(Rivival)이라는 용어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초대형 교회를 일군 1세대 시대가 가고 2세대 시대가 되면서 교회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은 예전과 같지 않다. 교회 내·외적인 분쟁, 세습으로 인한 부정적 여론 그리고 교회 생태계의 빈부 차이는 교회에 대한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사람들이 교회를 찾는 기준이 점차 달라지고 있다. 이전에는 이름난 대형 교회를 찾았다면 이제는 좋은 교회, 좋은 목자를 찾아 가고 있다. 좋은 교회로의 이미지 변신만이 한국 교회가 살 길이고 이것은 일회적 행사로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행함이 일치하는 모습에서 찾아야 한다.

과거 한국교회는 시대별로 성장에 대한 모습이 달랐다. 1960년대는 부흥사들이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복음의 못자리를 만들었다. 70년대는 여의도 광장에서 초대형 집회를 연속적으로 개최하며 핵분열 같은 폭발적인 성장의 새싹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났다. 80년대는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으로 부흥의 열매가 맺혔고, 90년대는 찬양운동으로 성장에 대한 찬양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혔다.
2000년대를 맞이한 21세기 교회는 말씀 따라 살아가며 믿음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는 신행(信行)일치 운동이 일어나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믿을 수 있는 그리스도인. 가고 싶은 교회. 지역사회와 괴리된 담이 높은 교회가 아니라 같이 웃고 같이 울어줄 수 있는 마음 친화적 교회, 이러한 교회에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다. 그동안 교회에 실망하여 등돌렸던 사람들도 주민 친화적인 마을교회, 동네목회는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팬데믹 이후 전세계는 정치·경제적 면에서 큰 후유증을 앓고 있다. 고유가, 고물가, 고금리는 전세계를 스테그플레이션을 넘어 공황시대로 넘어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그야말로 애굽의 7년 흉년시대가 올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한 교회는 재정 건전성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교회 건축은 뒤로 미루고 은행차입금은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내핍운용을 해야 할 것이다. 교회로서의 필수적 요소인 예배와 선교도 방만한 투자에서 선별적 투자로 전환해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며 시행해야 한다.
팬데믹 시대는 교회에는 가혹한 시련의 기간이었지만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주의 율례를 깨달은” 귀한 시기가 될 수도 있다.

김봉준 아홉길사랑교회 목사

<약력> △연세대학교(학사), 연세대 교육대학원(석사) △한세대학교(순복음신학교)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석사) △미 남침례신학교(목회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