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연달아 기준금리를 높이며 인플레이션 잡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선진국은 물론 개발도상국까지 이 대열에 동참해 75개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했거나 인상할 예정이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발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 흐름에 따라 경쟁하듯 금리 인하에 나섰던 각국 중앙은행은 이제 금리 인상 도미노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유럽중앙은행(ECB)이 2011년 이후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올리기로 결정하고 조만간 유럽연합(EU) 소속 국가들의 중앙은행장 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고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러면서 “현재까지 금리 인상에 나섰거나 인상키로 한 각국 중앙은행이 75곳에 이른다”고 전했다.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도미노는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이 결코 일시적이지 않다는 심각한 우려에 따른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시작된 원자재 및 공급망 부족에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석유·에너지 가격 폭등 현상까지 겹치자 소비재 상품뿐 아니라 중간재 부품, 인프라 건설 비용까지 줄줄이 급등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지금 인플레이션 기세를 꺾지 못하면 각국 경제가 절벽으로 몰리는 극한상황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 그만큼 인플레이션 확산 속도가 1970년대 에너지 파동 당시처럼 광범위하고 급격하다는 것이다.
미국에 이어 원자재 강국 캐나다와 산유국 멕시코도 금리를 인상했으며, 대외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미국의 금리 인상 직후 기준금리를 0.5% 포인트 올렸다. 경제 충격을 염려해 금리 인상을 주저하던 ECB마저 유로화 폭락 사태까지 겹치자 금리 인상을 위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주요 회원국 중앙은행장을 소집한 상태다.
다만 90년대 ‘잃어버린 20년’을 해결하겠다며 마이너스 금리까지 동원했던 일본은 여전히 금리 인상에 나서지 못하는 모양새다. 아베노믹스로 엄청난 국가부채를 통해 경기를 부양했는데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일본 정부의 채무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커지기 때문이란 해석이다. 금리 인상은 인플레이션을 잡을 순 있지만 엄청난 부작용도 동반한다. 기업들의 생산이 둔화되고 연쇄적으로 경기 불황이 본격화되며, 주식과 채권 가격이 하락해 금융시장 유동성도 가속화된다.
이런 상황에서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에 나선 데는 이 같은 부작용보다 인플레이션이 만들어내는 불황의 늪이 더 무섭다는 판단 때문이다. 원자재값 폭등으로 산업생산은 이미 둔화되기 시작했고 소비재 가격 급등으로 근로자의 실질임금은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NYT는 “지금까지 세계 경제 흐름에 별로 큰 영향을 받지 않았던 자원부국은 물론 경제 규모가 크지 않은 개발도상국까지 인플레이션에 몸살을 앓고 있다”면서 “동남아에서 중위권 수준인 필리핀마저도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을 막지 못할 정도”라고 전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