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올해 방문한 국가는 30개국이 넘는다. 2020년 1월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강타한 이후부터 따지면 100개국에 이를 정도다. 물론 방문국 대다수는 미국·서방이 아닌 시진핑의 ‘일대일로’ 정책 대상국이거나 러시아 북한 이란 등 반미 국가들이다.
왕 부장은 조만간 열릴 제20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양제츠 외교담당 정치국원을 밀어내고 그 자리까지 차지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정부보다 공산당이 더 우위인 중국 정치의 특성상 외교부장보다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의 힘이 더 세다. 만약 왕 부장이 이 자리까지 꿰차면 절대적인 중국 외교수장이 되는 셈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2일(현지시간) 왕 부장에 대해 “그의 생존법은 철저하게 ‘보스’에게 복종하는 것”이라며 “지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으로부터 그는 ‘내가 외국에 직접 안 가도 내 뜻을 그대로 전달해 줄 수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고 보도했다.
왕 부장이 시 주석 집권 이전까지는 미국·서방 친화적이며 세련되고 온화한 외교관이란 평을 받았지만 시 주석이 집권하자 자신의 입지를 180도 바꿨다는 것이다.
NYT는 “10년 전 중국 정부 내에서 러시아 근거리 외교 필요성이 부각되자 ‘미국과의 마찰이 격화된다’며 가장 먼저 반대했던 사람이 왕 부장이었다”며 “그런데 지금은 시 주석의 친러 외교노선을 누구보다 앞장서서 집행하는 인물이 됐다”고 전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미국과 강대강 외교대치 전선을 이끌 차기 중국 외교수장은 왕 부장의 몫이 될 개연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SCMP는 “72세인 양제츠는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공개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다”면서 “68세인 왕 부장이 양제츠의 자리를 꿰차는 데 최대 걸림돌은 중국 공산당의 이른바 ‘칠상팔하(七上八下)’ 원칙”이라고 전했다. 칠상팔하는 67세까지는 상무위원이나 정치국원이 될 수 있지만, 68세 이상은 은퇴한다는 원칙이다.
신문은 이어 “양안(중국·대만) 긴장이 고조되면서 미·중 관계가 악화하는 가운데 은퇴 규범에 대한 예외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서 “전 세계의 중국 외교관과 관측통들은 현시점에서 중국에 왕 부장의 경험과 인맥, 외교기술이 필수 불가결하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