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역사장 최장기 군주인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96세를 일기로 서거하면서 한 시대를 마감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윈스턴 처칠부터 시작해 지난 6일 임명된 리즈 트러스까지 그를 거쳐간 영국 총리만 15명이었다.
여왕은 70년의 재위 기간 내내 변함 없는 모습으로 충실한 역할을 수행했다. 여왕은 고령이 되면서도 특유의 유머감각과 날카로운 판단력, 친밀함을 잃지 않았고, 끝까지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여왕은 1926년 4월 21일 런던에서 나중에 조지6세 왕이 된 요크공 알버트 왕자와 스코틀랜드계 귀족 출신의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사이에서 첫째로 태어났다. 본명은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 윈저였는데, 가족들은 릴리벳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유일한 혈육이었던 여동생 마거릿 공주는 2002년 세상을 떠났다.
엘리자베스 2세는 1947년 11월20일 에딘버러공 필립 마운드배튼과 결혼했다. 1952년 2월6일 아버지 조지6세가 서거하자 왕위를 이어받았다. 웨일스공 찰스 왕세자를 비롯해 슬하에 3남1녀를 뒀다.
그의 운명이 바뀐 것은 1936년. 엘리자베스 2세는 아버지 조지 6세가 선왕 조지 5세의 찬남이었기 때문에 원래는 왕위 계승의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큰아버지 에드워드 8세가 이혼 경력이 있는 미국 평민 출신과의 스캔들로 왕위를 포기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아버지 조지 6세가 즉위하고 왕위와는 거리가 멀던 여왕은 승계서열 1위로 올라섰다. 영화 ‘킹스 스피치’의 주인공인 조지 6세는 심한 말더듬증을 극복하고 2차 대전 독일 공습 때에도 피하지 않고 국민 단합을 이끌어 존경을 받았다.
엘리자베스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 겨우 14살의 나이로 처음 대국민 라디오연설을 했다. 그는 신의 가호로 영국이 전쟁에서 최종 승리하고 평화를 회복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군주교육을 받던 중 여왕은 16세가 되면서 근위보병연대 시찰로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1945년 여군에 입대해서 군 트럭 정비 등을 하면서 2차대전에 참전한 군주가 됐다. 21세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해서 방송을 통해 “영연방에 평생을 바쳐 헌신하겠다”고 약속했다.
여왕은 1947년 11월 어릴 적 한눈에 반한 필립공과 결혼했다. 이듬해에는 찰스 왕세자를 낳았다. 그러나 곧 평범한 생활에 큰 변화가 닥쳐왔다. 1952년 2월 6일 조지 6세가 폐암으로 갑자기 서거했고, 25세 두 아이의 엄마인 여왕은 왕좌에 올라야 했다. 여왕은 당시 케냐 순방 중이었고 남편에게서 소식을 처음 들었다.
여왕은 1953년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장엄하고 화려하게 대관식을 치르고 이를 사상 처음으로 TV로 생중계했다. 이 방송을 2700만명이 지켜봤다. 이 행사는 필립공이 여왕의 배우자라는 새로운 역할을 맡아 기획해 성공리에 치러냈다.
여왕은 국민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1957년 TV 크리스마스 메시지를 시작하고 유튜브와 SNS도 일찍 도입했다. 호주에서 일반인 가까이로 다가가 걸은 일도 화제가 됐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때는 백발인 여왕이 개회식 영상에 ‘본드걸’로 출연했다. 영국이 큰 위기에 봉착했던 코로나19 때는 대국민 담화 메시지로 위로와 격려를 보냈다.
여왕의 남편 필립공은 지난해 4월 99세로 별세할 때까지 여왕의 곁을 굳게 지켰다. 여왕의 건강은 필립공이 떠난 뒤로 급격히 악화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처음으로 북아일랜드 방문 일정을 취소하고 병원에 하루 입원했다. 그 무렵부터 지팡이를 짚고 올해는 간헐적으로 거동에 불편을 겪는다고 밝혔다.
이후 올해 2월 코로나19에 감염됐다고 고비를 넘긴 뒤로는 주요 일정을 아들 찰스 왕세자에게 맡기는 경우가 늘었다. 영국 언론들은 공개하지 않은 건강 문제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늘도 있었다. 여왕은 자녀들 문제에 줄곧 시달렸다. 아들 찰스 왕세자의 결혼과 이혼은 세계적인 이슈가 됐다. 며느리 다이애나비가 왕실 인기를 높였지만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았고, 결국 1996년 이혼하며 세기의 스캔들이 됐다. 다이애나는 1992년 책 ‘다이애나의 진실’을 통해 불행한 결혼생활을 낱낱이 폭로했고, 찰스 왕세자와 엘리자베스 2세는 비난여론에 시달려야 했다.
그 와중에 후계자인 찰스 왕세자가 커밀라 파커 볼스와 불륜관계인 것이 드러나서 영국 왕실도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 특히 다이애나비가 비극적으로 사망한 뒤 여왕이 입장을 바로 내지 않았다가 비난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앤드루 왕자는 미성년자 성폭행 의혹으로 망가졌고 손자 해리 왕자가 왕실을 뛰쳐나가는 일도 이어졌다.
여왕이 가장 힘들었다고 밝힌 해는 1992년이다. 당시 찰스 왕세자 부부 불화가 심화하고 앤드루 왕자와 앤 공주가 이혼했다. 또 윈저성에 큰불이 나면서 막대한 복구 비용 문제가 불거졌다. 여론이 악화되자 여왕은 결국 소득세 면책 특권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