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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심점 잃은 英연방… “여왕은 떠났고 군주제도 끝나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서거하면서 영국과 옛 식민지인 ‘영연방’ 국가와의 관계가 대대적인 변화를 맞게 됐다. 호주 뉴질랜드 등은 찰스 3세를 새 국가원수로 인정했지만 다른 영연방 국가는 더 이상 군주제를 인정할 수 없다며 공화제 전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1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영연방 국가인 호주와 뉴질랜드는 찰스 3세의 즉위를 즉각 선포했다. 호주에서 영국 국왕의 지위를 대리하는 데이비드 헐리 호주 총독은 캔버라 국회의사당에서 찰스 3세를 국가원수로 선포했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도 “찰스 3세 즉위로 뉴질랜드와 영국의 관계가 더 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와 뉴질랜드의 빠른 행보는 ‘영연방 왕국’으로서의 상징적인 조치로 풀이된다. 영연방은 영국과 식민지였던 독립국 56개국으로 구성된 느슨한 형태의 연합체다. 이 중 15개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앤티가 바부다·바하마 등)은 영연방 왕국으로 영국 왕이 군주다. 영연방 왕국은 왕실을 대리하는 총독을 두고 영국과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영연방이 존속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영향력이 있었다. 여왕은 왕위에 오르기 전인 1947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평생 영연방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발표했다. 52년 즉위 후에는 각국을 방문해 결속력을 높였다.

그러나 최근 영연방 내 균열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영국의 영향력이 추락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군주제에 대한 회의론까지 제기되며 영연방 다수 국가가 공화제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 카리브해 섬나라 바베이도스가 독립 55년 만에 처음으로 대통령을 선출하면서 더는 여왕을 섬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영연방 왕국의 일원인 앤티가 바부다도 여왕 서거 사흘 만인 11일 공화제 전환을 위한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공화제를 택하려는 움직임은 자메이카 바하마 벨리즈 등 카리브해의 다른 영연방 국가에서도 속도를 내고 있다. 캐나다와 호주에서도 공화제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과거 식민통치에 대한 여전한 반감도 영연방 해체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윌리엄 왕세자 부부는 지난 3월 카리브해 3국을 찾았을 때 과거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과 노예제의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직면해야 했다. 케냐의 변호사 앨리스 무고는 “나는 (여왕의 서거를) 애도할 수 없다”며 여왕을 비판했다. 1952년 여왕 즉위 후 영국은 케냐에서 독립 투쟁인 ‘마우마우 봉기’를 잔혹하게 진압한 바 있는데 이를 저격한 것이다. 당시 케냐인 10만여명이 열악한 환경의 수용소에서 고문, 성폭행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마야 재서노프 하버드대 역사학 교수는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여왕의 존재는 피비린내 나는 영국 제국주의의 역사를 희석하는 데 도움을 줬다”며 “여왕은 떠났고, 제국주의 군주제도 끝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