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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에 맞선 외인부대…왜 우크라이나까지 가서 총을 들었나

우크라이나 국제의용군에 참여하기 위한 이들이 우크라이나 서부에 집결해 전장으로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다. 로이터

“주권 국가인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파시스트적 행태에 분노한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침략자들과 맞서 싸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한 이후 세계 각지에서 전장으로 향한 이들이 있다.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에 참여했던 퇴역 군인부터 각국의 현역 군인, 대학생, 노인, 여성, 각국 정보기관의 요원들까지 신분과 나이, 성별을 가리지 않고 외국인 지원자가 몰렸다.

이들은 5000달러(약 609만원)에 이르는 사비를 들여 폴란드로 향하는 항공권을 구매하고, 온라인 쇼핑몰에서 방탄복과 전투식량을 구입하는 등 열정을 보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들을 ‘국제 군단’(international legion)이라고 부르며 환영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군은 정식 홈페이지(fightforua.org)를 개설해 각국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관을 통한 의용군 가입 절차를 안내하고 있다. 홈페이지 화면 캡처

우크라이나는 압도적인 전력을 가진 러시아 침략군에 맞서 자발적으로 전투 의사를 밝힌 외국인으로 구성된 ‘외인부대’를 결성했다.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52개국 2만명이 자원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가 예상 밖 선전을 보여준 데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의용군 참여를 호소하자 우크라이나를 찾는 이가 늘었다. 어린아이를 비롯한 민간인 희생이 늘어나는 점도 러시아에 대한 이들의 항전 의지를 키웠다.

2만여명의 지원자 중 실제로 의용군에 합류한 이들의 수는 훨씬 적을 것이란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범죄 전과가 있는 사람들, 나이가 너무 많아 복무하기에 부적합한 사람들, 러시아 첩자를 거르는 등 검증을 거친 이들만 우크라이나 정규군에 편입됐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들에게 약 3000달러(약 360만원)의 월급을 지급하고 있으며 원할 경우 우크라이나 시민권을 부여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규군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은 자체적으로 조직된 민병대를 운영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외인부대는 전·후방을 가리지 않고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실제로 러시아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군 당국은 지원자들 대부분이 유럽인이라고만 밝힌 채 정확한 국적은 밝히지 않고 있다.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스웨덴 폴란드 스페인 등 서방권 국가 출신이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중 의용군 참여에 가장 적극적인 영국과 프랑스 등에는 외국인 용병 임시집결소도 설치됐다. 인도 일본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비유럽 국가에서 참전한 이들이 있다는 참가자의 전언도 나왔다.


한국인도 다수 의용군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교부에 따르면 해군특수전전단(UDT/SEAL) 출신 유튜버 이근(예비역 대위) 등 우리 국민 9명이 우크라이나에 입국했으며, 이들 중 상당수가 의용군에 합류해 현재까지도 활동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법적으로 우리 국민은 외국의 전쟁에 참전할 수 없지만 이들에 대한 국내 여론은 호의적이다. 리얼리서치 여론조사에 따르면 성인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 중 56.7%는 이근이 우크라이나로 출국한 것에 대해 ‘지지한다’고 답했다.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누군가를 도와주기 위한 정의로운 행동으로 본다는 의미다.

서방국 정부에서는 의용군 참여를 독려하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영국 리즈 트러스 외무장관은 “우크라이나 전투 지원 여부는 개인의 결정이지만 우크라이나 국민은 전체 유럽을 위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다”며 “사람들이 그 투쟁을 지지하고 싶다면 (영국 정부는) 그렇게 하도록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4000여명 정도가 지원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인은 법적으로 영토 밖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참여할 수 있다.

러시아와의 정면충돌을 피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참전에 지지하는 견해를 밝히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의용군에 합류한 이들은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에 합류하는 전투원들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고 보는 게 대체적인 국제사회의 시각이다.


의용군에 참여한 이들이 전한 전투 상황은 녹록지 않다. 국제의용군 중 일부가 총기와 방어구도 없이 방치돼있다는 외신 보도가 이어졌다. 워싱턴포스트(WP)는 “대다수 외국인 자원자가 전투 경험이 없는 데다 언어마저 통하지 않아 낙오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프랑스 출신의 한 의용군은 “15일째 우크라이나에 머물고 있으면서도 방탄조끼나 헬멧 등 기본적인 군용 물자를 받지 못했다”며 “(우리에게는) 무기도 탄약도 없었다.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고 전했다. 다른 의용군도 “사람을 돕기 위한 최선의 의도가 있어도 근본적으로 당신은 ‘대포받이’(cannon fodder)”라고 경고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의용군의 피해도 증가하고 있다. 3월 13일엔 러시아군이 의용군의 집결기지인 우크라이나 서부 야보리우 군사 훈련 시설을 공격해 35명이 사망하고 134명이 다쳤다고 우크라이나 군 당국이 발표했다. 일주일 뒤엔 키이우 인근에 있는 북서부 지토미르 기지가 공격받아 외국인 용병 100여명이 사망했다는 현지 보도가 나왔다. 러시아는 참전 국제의용군을 ‘봉급 용병’으로 비하하며 강력 대응을 예고한 바 있어 추가 피해도 예상된다.

일각에는 의용군의 전쟁 참여가 실질적인 군사적 도움보다 우크라이나가 국제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홍보 목적으로 유용하다는 견해를 내놓는다. 예컨대 러시아의 전쟁 범죄에 대한 국제적 비난 여론을 키우고, 현지 상황에 관심을 두게 함으로써 각국의 지원을 끌어올 수 있다. 일마리 카이코 스웨덴 국방대 전쟁학 부교수는 AP통신에 “국제의용군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다른 국가와 연결하는 방법”이라며 “군사력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기보다는 정치적으로 더 중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방위에 나선 국제의용군의 모습. 이 부대에는 미국, 영국, 스웨덴, 리투아니아, 멕시코, 인도 출신의 의용군이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위터 캡처

한편 유럽의 전문가들은 외국인 전투원이 전쟁터에 투입되는 것이 자칫 전쟁 양상을 격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는다. 사상적으로 경도된 이들이 전장에 투입되면 “정의를 수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적군에 대한 폭력성이 심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의용군에는 유럽 내 네오나치나 백인 우월주의자 등 극우세력도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독일 정부는 극우 운동가들을 감시하고 있으며, 이들이 분쟁 지역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현지 언론에 밝혔다. 마르티나 레너 독일 좌파당 의원은 “네오나치 활동가가 우크라이나에서 전투 경험을 쌓는 것은 독일 정치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이들은 새로운 전쟁을 그저 자신들의 폭력적 환상을 실연해보는 장으로 여긴다”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의 통제를 벗어난 이들이 전장에서 돌발행동을 벌이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들의 행동은 자칫 ‘탈나치화’를 침공 명분으로 내세운 러시아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들이 포로로 잡히면 제3국이 외교 분쟁에 휘말릴 위험도 크다. 데이비드 마렛 아메리칸대학 교수는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에 “외국인 지원병들은 법적 지위가 불안정하다”며 “용병은 제네바 협약상 전쟁포로 권리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 외교부는 현재 우크라이나 전역에 여행금지 지역을 뜻하는 여행경보 4단계를 발령했다. 국민이 외교부로부터 허가를 받지 않은 채 해당 국가를 방문하거나 체류할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