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23개 산유국 협의체인 OPEC플러스(OPEC+)가 다음 달부터 원유 생산을 하루 200만 배럴 줄이기로 해 세계 경제에 비상등이 켜졌다. 최근 진정세인 유가가 다시 치솟으며 인플레이션 압박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전략비축유 추가 방출 등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OPEC+는 5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장관급 전체회의를 갖고 11월 하루 원유 생산량을 이달보다 200만 배럴 줄이기로 합의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팬데믹 이후 최대 규모 감산이다. 경기 침체 우려로 원유 수요가 감소하고 있는 만큼 OPEC+ 국가들이 공급을 줄여 유가를 떠받친다는 취지다. 뉴욕타임스(NYT)는 “OPEC+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감산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OPEC+의 감산 조치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다시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날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날보다 1.43% 오른 배럴당 87.7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WTI 가격은 3거래일 연속 올라 지난 9월 14일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유가는 지난 6월 배럴당 122달러를 넘었다가 최근 70달러 선까지 하락했다. 다만 이번 OPEC+ 합의에 따른 실제 감산 규모는 하루 100만 배럴을 약간 웃돌 전망이어서 유가 상승이 제한적일 것이란 견해도 있다.
감산을 필사적으로 막았던 미국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 인상 등 모든 대책을 펼치고 있어 유가 강세가 이어지면 정책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백악관은 이날 전략비축유 1000만 배럴을 내달 추가로 방출하겠다고 밝혔다. 미 행정부가 베네수엘라가 원유를 생산·수출할 수 있게 제재를 완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번 감산 조치로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가격 상한제 적용을 골자로 하는 유럽연합(EU)의 추가 대러 제재 합의안의 실효성도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EU는 가격 상한제를 통해 러시아의 원유 수출에 타격을 준다는 방침이지만 감산으로 유가가 상승하면 중국과 인도 등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하는 나라가 이를 상쇄하게 된다.
러시아는 가격 상한제를 채택한 국가에는 원유를 공급하지 않고 추가 감산에 돌입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알렉산드르 노박 러시아 부총리는 OPEC+ 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가격 상한제는 에너지 시장에 심대한 해를 끼치고 물량 부족과 가격 상승을 초래할 뿐”이라며 “우리는 시장에 기반한 가격 체제를 준수하는 측에만 원유를 공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