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우호 세력으로 평가받는 올리가르히(신흥 재벌)들이 서방 제재를 피하고자 자산을 몰래 옮기고 있다는 증거를 확인했다고 미 당국자가 밝혔다. 추가 제재를 염려해 아직 제재 대상에 오르지 않은 올리가르히까지 자산 감추기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 집권층 자금을 추적·몰수하기 위한 미 태스크포스(TF) ‘클렙토캡처’(KleptoCapture) 앤드루 애덤스 팀장은 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자산 조사가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 지역으로 요트, 비행기 등 동산(動産)을 옮기려는 노력이 진행 중”이라며 “아직 제재를 가하지 않은 올리가르히들도 (선제적으로) 자산을 이전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클렙토캡처는 푸틴 대통령과 측근들 자산을 추적·압수하기 위해 미 법무부 산하에 설립된 특별 전담반이다. 권력을 남용하는 부패 관리 클렙토크라시(kleptocracy·도둑 정치)와 붙잡는다는 뜻의 캡처(capture) 합성어다.
아담스 팀장은 “조사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지역에 자산을 숨기려 해도 사상 최고 수준의 국제 협력이 진행되고 있다”며 “미국 검찰은 이전에는 안전한 (자산) 피난처로 여겨졌던 곳에서도 정보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 “많은 기관이 자발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민간부문의 협력도 이미 많다”고 덧붙였다. 다만 TF에 정보를 제공한 특정 관할 구역에 대한 세부 정보는 언급하지 않았다.
아담스 팀장은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병합한 뒤 시행된 일련의 제재로 미국은 올리가르히에게 매력적인 곳이 되지 못했다”며 “해외에 있는 자산을 표적으로 삼는 것이 TF의 주요 업무”라고 말했다.
미국은 올리가르히들이 숨겨 놓은 자산 정보를 동맹에 넘겨 압류를 진행하고 있다. 실제 스페인 정부는 러시아 국영 방산업체 로스텍 최고경영자(CEO) 세르게이 체메조프와 연결된 1억4000만 달러의 호화요트 발레리를 압류했다. 프랑스는 러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 로스네프트의 이고르 세친 선박을, 이탈리아는 러시아 억만장자 안드레이 이고레비치 멜니첸코의 요트를 압류했다.
미 법무부는 지난달 자국 기관이 외국 파트너에게 제공한 정보가 여러 선박을 압수하는 데 기여했다고 밝혔다.
아담스 팀장은 이번 조치를 시행하면서 미국이 과거 미 영해 밖에서 북한 화물선 와이즈 어니스트 호를 압류한 사건을 참조했다고 말했다. 와이즈 어니스트 호는 2019년 3월 북한 석탄 등을 운반하다가 인도네시아 정부에 억류됐다. 미 검찰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 위반을 이유로 인도네시아로부터 선박을 넘겨받아 압류조치 했고, 소송을 통해 그해 10월 최종 몰수 판결을 받아냈다.
아담스 팀장은 이번에도 올리가르히 자산을 영구 몰수하기 위한 법정 투쟁을 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로이터통신은 “TF는 제재 대상자들의 의심스러운 자산 거래를 돕는 은행, 암호화폐 거래소, 기타 금융 기관 등도 표적으로 삼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애덤스 팀장은 최근 BBC와 인터뷰에서 “돈을 세탁하거나 숨기려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건 요트나 주택뿐만 아니라 예술품과 암호화폐도 있다”며 “금융 서비스 회사, 부동산 회사, 은행, 제재 회피를 돕거나 모른 척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다. 조력자(인에이블러·enablers)로 불리는 사람들을 쫓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