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am News

민간인 고문·살해·강간·유기… 젤렌스키 “끔찍한 제노사이드”


지난 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부근 부차시 도심의 대형 교회 앞마당. 흙더미 사이에서 사람의 팔만 보이는 곳이 발견됐다. 우크라이나군이 이 구덩이를 파헤치자 충격적인 장면이 드러났다. 총상을 입은 채 사망한 민간인 100여구의 시신이 무더기로 나온 것이다.

러시아군이 황급히 후퇴한 부차의 도심 곳곳에는 등 뒤로 손이 묶이고 무릎이 꿇려져 머리에 총상을 입은 채 숨진 민간인 시신이 잇따라 발견됐다. 서방 언론은 “우크라이나 당국에 의해 확인된 민간인 시신만 410구”라며 “대부분 남성이었지만 도시 외곽의 농토, 주택 등지에선 성폭행 흔적을 가진 여성의 시신도 다수 있었다”고 전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러시아군의 만행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의 ‘베를린 학살’을 떠올리게 한다”고 보도했다.

베를린 학살은 2차 대전 막바지 베를린 동쪽지역을 장악한 소련군이 눈에 띄는 대로 민간인을 살해하고 강간·고문·약탈·시신유기를 자행한 사건이다. 2차 대전 이후 유엔이 ‘대량학살(Genocide·제노사이드) 범죄의 예방과 처벌에 관한 협약’을 만든 것도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뿐 아니라 이 사건 때문이다.

제노사이드는 특정 국민·민족·인종·종교·정치 집단의 전체 또는 일부를 전멸시킬 의도로 행해지는 비인도적 폭력 범죄를 뜻한다.

부차에서 생존한 50대 남성은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길거리에서 살해된 민간인들은 러시아군이 후퇴하는 과정에서 살해된 게 아니다”면서 “점령 첫날부터 집 안의 남성을 다 끌어내 손을 묶고 머리에 총을 쐈다”고 치를 떨었다. 또 “심지어 주택과 아파트 지하실을 향해선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고 증언했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국제 인권단체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어린이들에 대해서도 고문·폭행·살인을 자행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또 다른 부차 주민의 말을 인용해 “러시아군이 점령 첫날부터 민가에서 보드카를 전부 가져갔다”면서 “술 취한 군인들은 사냥하듯 민간인을 보이는 대로 모조리 쐈다”고 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즉각 “러시아군에 의한 제노사이드”라고 성토했다. 그는 미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러시아의 지배를 원하지 않는다. 이것이 (러시아군에 의해) 우크라이나가 파괴되고 국민이 말살당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국민 화상 연설을 통해서도 “지구상에서 이런 악행은 러시아의 전쟁범죄가 마지막이 돼야 한다”면서 러시아 전쟁범죄 조사 특별사법기구 창설을 승인했다.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은 즉시 부차 지역에서의 러시아군 전쟁범죄 증거를 수집·조사하는 법적 절차에 돌입했다.

러시아의 민간인 학살은 한두 번이 아니다. 자신들이 도발한 전쟁이 정체 상태에 돌입할 때마다 행한 전형적인 수법이라는 것이다.

두 차례에 걸쳐 발발한 체첸전쟁과 시리아 내전이 가장 좋은 예다. 1999년 제2차 체첸전쟁 당시 러시아군은 수도 그로즈니를 함락하지 못하자 민간인 주거구역을 무차별 폭격하고 주민 수천명을 살해했다. 2016년 발발한 시리아 내전에선 반군 거점이던 알레포 주거지역을 무차별 공격하고 화학무기까지 동원해 대량학살에 나섰다.

그러나 러시아는 부차의 시신들이 우크라이나 정부에 의해 연출된 것이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소집을 요구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러시아군 범죄라며 공개된 모든 사진과 영상은 서방 언론을 위해 연출된 것”이라며 “(부차) 점령기간 민간인은 자유롭게 돌아다니거나 대피했다”고 강변했다.

마리아 자카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안보리 소집과 관련해 “평화협상을 방해하고 부차 도발을 빌미로 폭력사태를 확대하려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시도를 논의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