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40년 만의 최악의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지났다는 신호가 연이어 나타나고 있다. 식품과 에너지 가격 내림세가 이어지면서 소비자들의 기대 인플레이션도 낮아졌다. 다만 인플레이션 수치 자체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고, 하락 속도는 완만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방향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12일(현지시간) 11월 소비자 전망 설문조사 결과 1년 후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5.2%로 10월 조사 때보다 0.7% 포인트 하락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8월 이후 최저치다.
소비자 심리를 누그러뜨린 건 휘발유와 식료품 가격 하락이다. 11월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앞으로 1년간 휘발유 가격이 4.7%, 식료품 가격이 8.3% 각각 올라갈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지난 10월 조사보다 각각 0.6% 포인트, 0.8% 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실제 전미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이날 기준 미 전역의 보통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3.262달러로 1년 전(3.329달러)보다 낮아졌다. 지난 6월 고점(갤런당 5.016 달러)보다 33% 이상 싸다. 현재 휘발유 가격이 1년 전보다 낮은 지역은 미국에서 34개 주에 달한다. 앤드류 그로스 AAA 대변인은 “이 추세가 계속되면 많은 주에서 내년 초까지 평균 가격이 갤런당 3달러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주택 심리도 꽁꽁 얼어붙었다. 1년 후 집값 상승률 전망치는 전월보다 1.0% 포인트 하락한 1.0%로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인 2020년 5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향후 1년간 임금상승률 전망치 역시 전월보다 0.2% 포인트 낮아진 2.8%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13일 발표되는 1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도 전년 대비 7.3% 상승해 직전 달보다 0.4% 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지난 8월 8.3% 이후 3개월 연속 하락이다. 공급망 병목 현상이 해소되고, 소비 수요가 둔화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블룸버그는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가 전년 동기 대비 6.1%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여전히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보다 3배가량 높은 수준이다. 높은 수준의 임대료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유럽발 에너지 위기, 중국의 경기 재개에 따른 소비 확대 등 변수도 남아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이 앞으로 수개월 간 눈에 띄게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지만 급격한 하락을 예측하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반면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는 고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월부터 주식과 채권 수익률이 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며 “이는 성장 둔화에 대한 우려가 인플레이션 우려를 능가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투자자들의 주요 관심사가 인플레이션에서 경기침체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