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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집·신당 즐비하던 곳 경주 ‘핫플’로 뜬 사연은


1000년 세월이 켜켜이 쌓인 고분과 유적, MZ세대의 감성을 담은 21세기의 길이 공존하는 곳. 경북 경주의 오늘은 기성세대가 떠올리는 불국사 첨성대 천마총 등에 머물러 있지 않다. 고옥(古屋)들이 카페 맛집 사진관 액세서리숍 등으로 변신하고, 전국에서 찾아온 방문객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손꼽히는 ‘핫 플레이스’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4일 찾아간 ‘황리단길’(경주 황남동과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을 합성한 명칭)에는 평일임에도 세대와 국적을 초월한 관광객이 골목 곳곳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황리단길에서 황남동 주민자치센터를 따라 첨성대로 향하는 길목. 커다란 전통 한옥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한 무리의 외국인에게 경주의 매력을 물었다.

“맛있는 음식과 벚꽃, 역사적 관광지를 한번에 누릴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이 매력인 것 같아요. 전통 한옥인데 기둥마다 십자가가 장식된 모습이 이색적이어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어요.”(미셸 캠벨·29·캐나다)

외국인들이 사진을 찍던 건물은 황남동 내 유일한 교회인 경주남부교회(김상정 목사)다. 김상정 목사는 “지도를 보면 미추왕릉 내물왕릉 등 왕들의 무덤으로 둘러싸인 곳에 교회가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불교와 유교 문화가 깊이 뿌리내린 동네에 복음의 씨가 뿌려지고 싹을 틔우는 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한때는 유교 문화가 팽배한 양반촌이었어요. 어르신들이 ‘교회 가면 천벌 받는다’는 얘길 입에 달고 계셨고요. 교회 개척은커녕 전도 자체를 못 했던 동네였지요. 2001년 부목사로 사역하던 당시엔 동네를 다 헐고 공원화한다고 해서 주민들이 대거 이사를 가고 빈집에 무당들이 둥지를 틀면서 무당 마을이 되기도 했습니다.”

2007년 담임목사로 청빙된 김 목사는 사생결단의 마음으로 성도들과 기도운동을 펼쳤다. 그는 “교회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점집, 신당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는 게 일상이었다”고 회상했다. 무속인들과의 접촉에 나선 지 7년여 만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교회를 포위했던 무당집들이 하나둘씩 외곽으로 빠져나갔다.

신앙과 인내로 예배 터를 지켜내며 복음의 물꼬를 트자 크고 작은 기적이 잇따라 찾아왔다. 경주시가 2014년부터 추진했던 한옥정비지원사업이 황남동에 확대 시행되면서 한옥 건축물의 증개축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리모델링과 함께 개성 넘치는 공간들이 입점하자 전국에서 사람이 몰려왔다.


그사이 경주남부교회의 지역 내 입지는 더욱 탄탄해졌다. 2016년 9월 규모 5.8의 강진이 발생해 황남동 일대 700여 가옥이 피해를 입었을 땐 교회가 나서 위로를 전하며 복구를 도왔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도 교회가 선제적으로 감염 확산 방지와 방역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신뢰를 쌓았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풋살대회와 길거리농구대회에는 수백 명이 참가해 뜨거운 관심을 보였고, 경주정보고 신라공고 등 지역 내 청소년을 격려하기 위한 장학금 전달은 성도들의 ‘경주 사랑’을 보여주는 창구가 됐다.

주말이면 10만여명이 방문할 정도의 명소로 자리매김한 황리단길 주변은 매일 ‘주차대란’이 벌어진다. 교회는 공영주차장과 골목길 공간으로 해소되지 않는 주차 문제를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예배 시간을 제외하곤 주차장을 개방하고 있다. 여행 유튜버나 블로거들이 소개하는 ‘황리단길 무료주차 꿀팁’을 보고 경주남부교회를 찾는 이들도 많다.

새로운 방식으로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시도도 이어진다. 김 목사는 “황남동의 80~90%는 외지인이고 경주남부교회와 접점이 없는 분들이라는 점에 착안해 교역자들이 식당과 카페를 방문하고 유튜브로 홍보해주는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화 콘텐츠와 기독 신앙을 접목해 보려는 노력도 눈에 띈다. 그중 하나는 경주의 역사와 왕릉, 고분 등의 문화재를 기독교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권력과 정의, 삶과 죽음을 해석하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문화관광 프로젝트다. 김 목사는 “역사, 문화선교에 조예가 깊은 전문가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며 “크리스천들이 경주에 올 때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문화관광 가이드를 만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경주=글·사진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